아프간 피랍사태 1년… 이슬람 전문가 양성 시급하다더니

  • 입력 2008년 7월 15일 02시 51분


“중동 연구 국책기관 한 곳도 없다”

《지난해 7월 19일 한국의 봉사단원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무장 세력에 납치되자 정부는 27일 전문가를 현지 협상 팀에 파견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8일이나 지난 뒤였다. 현지 전문가를 찾지 못해 수소문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마저도 파슈툰어와 다리어를 쓰는 아프간에 아랍어 전공자를 보내는 바람에 별 소득을 얻지 못했다. 피랍 사태를 계기로 중동 및 이슬람 지역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1년이 흐른 지금 달라진 게 있을까. 지역 전문가 양성소 역할을 해야 할 대학에선 “별 기대도 안 했고 실제 달라진 것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외국어대 중동연구소장인 장병옥 교수는 “2004년에 김선일 씨가 이라크에서 납치 살해됐을 때도 지역 전문가 양성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달라진 게 없었고 아프간 사태 이후에도 말만 무성했지 정부나 기업의 지원은 없었다”고 말했다.

대학의 중동 지역 전문가 육성은 오히려 뒷걸음질하고 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한국중동협회 사무차장인 김정명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1980년대 학번 이후 중동 현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장병옥 교수는 “50대 중반 나이에 100만 원 미만의 월급을 받으며 시간강사를 하고 있는 박사들도 있는데 이런 선배들을 보면서 누가 유학을 가려 하겠느냐”면서 “학문의 대가 끊길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학자들은 “고유가에 따른 에너지 확보 문제, 오일머니 덕택에 큰 시장으로 급성장한 중동 지역 공략 등 경제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중동지역 전문가 양성은 국가 차원에서 시급히 대처해야 할 문제”라고 말한다.

한국중동학회 회장인 이희수 한양대 교수는 “우리가 사용하는 원유의 70% 이상을 중동에서 수입하고 있고 해외 건설 및 플랜트 공사 수주액의 80%가량을 차지하는 게 중동 지역”이라면서 “최근에는 가전 자동차 정보기술(IT) 분야를 중심으로 한국제품이 중동시장을 휩쓸고 있는 등 무시할 수 없는 경제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대중동 수출은 1997년 51억 달러에서 2007년에는 197억 달러로 28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수입은 172억 달러에서 675억 달러로 292% 늘었다.

이 교수는 “이런 상황인데도 아랍권에 정통한 전문가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며 중동을 포함한 특수 지역을 연구하는 국책 연구원이 없는 나라는 한국이 OECD 국가 중 유일하다”고 꼬집었다. 김정명 교수는 “일본만 하더라도 중동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500명 이상”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중동 지역 연구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더욱 강화하는 추세. 미국 정부는 2006년 아랍어 중국어 한국어 등 외국어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 ‘국가 안보 언어계획’을 도입해 해당 언어 연구자들에게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이런 지원 덕분에 미국의 2006년 현재 중동 지역 유학생은 2005년에 비해 31% 증가한 것으로 미국 국제교육연구소(IEE)는 집계했다.

한국의 중동 연구자들이 그나마 기대를 건 곳은 지난해 처음 실시된 학술진흥재단의 인문학 지원 프로젝트인 ‘인문한국(HK)’ 사업이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기대에 못 미쳤다. 장병옥 교수는 “처음엔 중동이나 아프리카처럼 외지 중심으로 지원을 하겠다고 했는데 희소 지역학 연구소들은 거의 지원 대상으로 뽑히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학계에선 중동학 지역 연구가 뒷걸음질하면서 중동과의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지 않는 점을 크게 우려했다. 최영길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교수는 “한국의 설계사들이 중동 지역 한 국가에서 성지 침입죄로 구속된 사건이 있었는데 유학 때 만든 인맥을 통해 이들을 빼낸 적이 있다”며 “친구가 배반하지 않는 한 절대 친구를 배반하지 않으며 내 친구가 추천하는 사람은 절대 신뢰한다는 게 중동 사람들의 정서”라고 설명했다.

학계에선 한국과 아랍권 22개국 간의 교류를 목적으로 이달 초 공식 발족한 민관합동 재단법인 ‘한·아랍 소사이어티’의 활동을 관심 깊게 바라보고 있다. 이희수 교수는 “재단 산하에 연구소를 설립하거나 학자들의 연구를 뒷받침함으로써 중동, 아랍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힘써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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