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차마 네 모습은 못보겠구나”

  • 입력 2008년 6월 9일 20시 03분


7일 저녁 김영백 씨(오른쪽)와 예비역 전경을 자식으로 둔 한 어머니(가운데)가 대기 중인 의경들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고 있다. 어머니의 옆에 서 있는 경찰이 들고 있는 것은 김 씨가 건넨 간식거리. 신진우 기자
7일 저녁 김영백 씨(오른쪽)와 예비역 전경을 자식으로 둔 한 어머니(가운데)가 대기 중인 의경들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고 있다. 어머니의 옆에 서 있는 경찰이 들고 있는 것은 김 씨가 건넨 간식거리. 신진우 기자
"국민들이 이렇게 공권력을 무시하면서 나중에 필요할 때 무슨 면목으로 자신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겠어요."

지난해 12월 입대해 서울경찰청 산하 기동대에서 의경으로 복무 중인 아들을 둔 김영백(50)씨는 9일 마음 속에 눌러왔던 말을 터트렸다.

5~8일 있었던 '72시간 릴레이 집회'와 10일 '촛불 대행진'을 앞두고 그는 지난달 31일 회사에 휴가를 냈다.

다른 전·의경 부모들과 함께 시위 현장 부근에서 시민들에게 '평화집회'를 호소하며 아들을 조금이라도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매일 저녁 주머니를 털어 초콜릿, 과자 등 간식거리를 사서 촛불시위 현장으로 간다.

김 씨는 "새벽까지 이어지는 집회에 전·의경들이 거의 탈진 상태다. 피곤함은 달래주지 못해도 배고픔이라도 위로해 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6일 오후부터 7일 새벽까지 거리에서 꼬박 밤을 새웠다. 7일 새벽 서울 종로구 신문로 새문안교회 부근에서 전경과 시위대가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였던 현장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정신없이 현장으로 달려갔을 때는 경찰과 시위대가 뒤엉켜 아수라장이었다. 일부 전경들은 다쳐서 대열 뒤로 실려 왔다.

김씨는 "'내 아들도 저렇게 될지 모르겠구나'라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119에 전화해 구급차를 불렀지만 차가 부족해 오기 힘들다는 말을 듣고는 "국가가 국가에 봉사하는 젊은이들을 버린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선두에 있다가 시위대에 밟힌 한 전경이 뒤로 실려 왔다. 호흡도 불규칙하고 눈도 풀려 거의 실신 상태였다.

김씨가 담요를 덮어주려고 하자 그 전경이 갑자기 "내 후임 살려 달라. 나 없으면 깔려 죽을 것"이라고 소리쳤다.

몇 분 뒤 왼쪽 얼굴이 빨갛게 부은 한 전경이 실려 왔다. "어떻게 된 거냐"는 물음에 그 전경은 "앞에 있다가 몇 대 맞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는 "너무 안타깝고 억울한 마음에 '한 대 맞으면 한 대 때려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6월 8일 저녁 촛불시위 현장
영상취재: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김한준 객원기자

그는 "평화시위라는 것이 왜 보는 사람한데 공포감을 줘야 하나. 전의경들도 대열 안에선 무섭다고 말 못하지만 부모랑 있을 땐 '가끔씩 공포감에 오금이 저린다'고 말한다"고 흥분했다.

시위대와 크게 충돌하지 않았는데도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두려움 때문에 실신하는 전경도 봤다.

집회 현장에서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전·의경을 앞에 두고 모욕적인 말을 하는 것도 수없이 봤다.

그는 "아들이 갑자기 '시위대로부터 부모님을 모욕하는 말을 들었다'며 오히려 미안해 하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그럴 때면 화도 나지만 오히려 나 때문에 아들이 더 힘들어 할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이 지금 어디에서 근무하는지 알지만 시위현장을 본 뒤에는 아들을 직접 볼 자신이 없어 갈 엄두가 안 난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는 "한 전경의 어머니가 너무 분한 나머지 우리도 불법 집회 반대하는 집회라도 한번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제안했지만, 다른 부모들이 '우리가 집회하면 아들들 잘 시간이 줄어든다'며 오히려 말린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남기고 초콜릿이 가득 실린 차를 타고 집회 현장으로 갔다.

신진우 기자niceshin@donga.com


▲6월 7일 밤~8일 새벽 촛불시위 현장
영상취재: 서중석 동아닷컴 기자
   김한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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