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토론해 봅시다]인간의 기질은 타고날까…

  • 입력 2008년 3월 24일 03시 00분


본성은 본질적으로 유전 vs 교육-사회적 환경이 좌우

○ 배경

경기 안양 초등생 유괴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검거되면서 사라진 아이들의 생존에 대해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던 가족과 온 국민이 비통해 했다. 경찰에 따르면 용의자의 집 컴퓨터에서 다수의 아동 포르노 비디오 파일이 발견됐다고 한다. 경찰은 그의 범행이 비정상적인 성욕 때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패륜적인 흉악 범죄는 계속적으로 있어 왔다. 과연 극악한 범죄행위가 사라진 문명사회는 실현 불가능한 것일까? 우리 사회가 좀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번 사건을 통해 인간이 과연 어떤 존재이고, 어떠한 이유로 악행을 범하는지에 대해서 탐구해 보자. 인간의 기질은 과연 타고나는 것인가, 아니면 길러지는 것인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의미 규정에 따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처방도 달라질 수 있다. 상자 안의 사과가 썩는 것은 ‘사과 자체가 먼저 썩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썩은 상자가 사과를 썩게 만들었기 때문’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찬성 논거: 인간의 기질은 타고나는 것이다.

일란성 쌍둥이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양육해도 자라면서 성격과 취향이 비슷해진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이 실험은 유전의 힘을 증명해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 측면이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를 일컬어 ‘생물학적 결정론’이라고 한다.

물론 생물학적 결정론의 입장이 지나칠 경우 우리는 ‘유전적으로 적합한 자’와 ‘유전적으로 부적합한 자’를 차별하게 되어 인종적·계급적·성적 차별을 정당화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반사회적 범죄 행위를 볼 때 유전적·정신병적 차원에서 범행의 원인을 찾는 것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된다.

▶반대 논거: 인간의 기질은 환경에 의해 길러진다.

인간은 개인적 기질이나 본성보다 그가 처한 상황, 배경, 경험의 맥락에 의해 좌우되는 존재다. 범죄 행위는 사회적 부조리나 불평등한 환경 때문인 경우가 많다. 물론 그것이 개인의 비도덕적 악행에 대한 책임을 면하게 해줄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의 악행을 개인적 차원에서만 접근한다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은 찾을 수 없다. 결국 불평등한 사회를 개선하는 것이 반사회적 범죄 행위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볼 수 있다.

스페인 철학자 호세 가세트는 “인간에게 본성이란 없다. 그가 가진 것은 역사뿐이다”고 말했다. 범죄 행위는 빈곤과 교육, 사회적 환경과 같은 사회 구조적 관점에서 설명할 때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 핵심 찌르기

인간 존재를 규명하기 위해서 단순히 성선설, 성악설, 성무선악설의 도식을 응용하는 것은 피했으면 좋겠다. 인간 본성론을 사용해서 설명할 경우 ‘그래서 뭐란 말인가(So What)?’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 채 평면적 해설에 그치기 쉽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론을 두고 맹자 순자 고자가 각기 내놓은 논변은 인간과 사회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방안의 근거로 제시될 때만 의미를 가진다.

‘깨진 유리창’ 실험이라는 것이 있다. 치안이 허술한 골목에 차량 두 대를 보닛을 열어 둔 채 세워두고, 그중 한 대는 고의적으로 창문을 조금 깨뜨린 상태로 1주일간 방치했다. 아주 약간의 차이일 뿐인데, 1주일 후에 두 자동차의 상태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보닛만 열어 둔 차는 특별한 변화가 없었지만, 창문을 깨뜨린 차량은 배터리와 타이어가 없어졌다. 창문이 깨진 차에는 낙서나 투기 등 파괴 행위가 이어져서 1주일 후에는 완전히 고철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인간은 작은 환경의 차이에 이토록 다르게 반응하는 존재다.

선과 악의 경계는 모호하고 불완전할 때가 많다. 에셔의 그림 ‘천사와 악마’처럼 천사가 악마가 되고 악마가 천사가 되는 경우가 현실에서는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유전자에 의해서 조종되는 ‘로봇’이 아니고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찰흙 인형’도 아니다.

○ 논술 쓰기

‘인간의 기질은 타고나는 것인가, 길러지는 것인가’라는 주제는 오랜 논쟁 거리였다. 최근의 학문적 성취는 본성(유전)과 양육(환경)의 요소를 고루 중시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절충이 아니다. 유전자가 인간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부정할 수 없듯이 환경과 양육에 의해 인간 본성도 만들어진다는 주장인 것이다. 유전과 환경이 동시에 중요하다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신뢰하고 열심히 살아가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인문학의 근본 물음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는 심리학과 사회 생물학의 교류를 통해 발전해왔다. ‘생물학적 결정론’과 ‘환경 결정론’의 두 가지 입장에서 인간의 본성과 행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정리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 관련 문제

이기심에 관한 제시문과 겸애설에 관한 제시문에서 각각 나타난 핵심적 주장은 무엇이며, 또 가장 중요한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지 300자 내외로 기술하시오. 겸애설에 관한 제시문의 관점에서 이기심에 관한 제시문의 입장을 논하고, 겸애설에 관한 제시문의 문제점을 포함하여 500자 내외로 논술하시오.

[한국외대 2006학년도 정시 논술]

권윤호 경기 용인 풍덕고 교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