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히 낳아 키워요” 양육 미혼모 늘었다

  • 입력 2007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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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의 변화 등으로 아이를 입양시키기보다는 직접 키우기를 희망하는 양육 미혼모가 꾸준히 늘고 있어 이들을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러스트=박초희 기자
가치관의 변화 등으로 아이를 입양시키기보다는 직접 키우기를 희망하는 양육 미혼모가 꾸준히 늘고 있어 이들을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러스트=박초희 기자
미혼모 3명중 1명 “직접 양육”… 21년만에 5배로

학력 높고 나이 많아… 재결합 관계없이 ‘선택’

김모(31·여·서울 광진구 구의동) 씨는 만 26개월 된 아들 훈이(가명)를 기르고 있다. 2005년 봄 그는 헤어진 남자 친구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눈앞이 캄캄했다.

한동안 정신적 방황을 한 끝에 훈이를 낳은 김 씨는 처음에는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이를 입양기관에 맡겼다. 그러나 사흘 만에 아이를 다시 찾아왔다. 아이가 눈에 아른거려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미혼모자 시설에서 운영하는 ‘그룹홈(양육모 공동생활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며 1년 동안 직업훈련을 받아 미용 자격증을 땄다. 지금은 대형 미용실에 취직해 둘만의 생활을 꾸려 가고 있다.

그는 외국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용실을 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혼자서 일과 육아를 감당해야 하는 고된 생활이지만 얼마 전부터는 영어회화 공부도 시작했다. 김 씨는 “아이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열심히 살 수 없었을 것”이라며 “훈이는 내 운명”이라고 말했다.

김 씨처럼 아이를 입양기관 등에 맡기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적극적으로 키우는 ‘양육 미혼모’가 늘고 있다.

대부분의 양육 미혼모는 자신이 미혼모란 사실을 외부에 숨긴 채 아이를 키우기 때문에 양육 미혼모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최근 들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양육 미혼모 늘어=한국여성개발원에 따르면 미혼모들의 양육희망 비율은 1984년 5.8%, 1998년 12.1%에서 2005년 31.7%로 증가했다.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의 미혼모자 시설인 ‘애란원’ 한상순 원장은 “5년 전에 비해 입양 대신 양육을 택하는 미혼모가 10%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에 있는 미혼모자 시설에서 최근 출산한 미혼모 서모(26) 씨는 “처음부터 아이를 키울 생각이었다”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내 아이는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입양아 수 감소와 입양아 중 미혼모가 낳은 아동 비율의 감소를 통해서도 양육 미혼모의 증가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국내외 입양아는 1990년 4609명, 2000년 4046명, 2004년 3899명, 2006년 3562명으로 꾸준히 줄고 있다. 입양 아동 중에서 미혼모 아동이 차지하는 비율도 1990년대 80% 수준에서 2000년 이후 60%대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입양아가 줄고 입양아 중에서 미혼모 아동의 비율이 줄어드는 것은 그만큼 양육 미혼모가 늘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 수준 높고 나이도 많아=양육 미혼모들은 아이를 입양시키거나 시설에 맡기는 미혼모에 비해 학력은 높고 나이가 많은 편이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그룹홈에 입소한 65명을 조사한 결과 전체 미혼모의 교육 수준은 고교 졸업 이하가 78.4%, 대학 재학 이상이 21.6%이었다. 반면 양육 미혼모는 고교 졸업 이하가 71.4%, 대학 재학 이상이 28.6%로 전체 평균보다 높았다.

양육 미혼모들은 평균 연령도 높았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미혼모 시설에 입소한 222명을 조사한 결과 양육 미혼모의 평균 24.5세로 전체 미혼모 평균 21.4세에 비해 3세가량이 높았다.

지방의 한 그룹홈에서 8개월 난 딸과 사는 조모(19) 씨는 임신과 출산 때문에 고교를 중퇴했다가 고졸 검정시험을 보기 위해 최근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아이를 돌보면서 공부하는 게 쉽지 않지만 고등학교는 꼭 마치고 싶다”며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기회가 되면 대학에도 진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양육은 내 스스로의 선택”=양육 미혼모의 증가는 단지 건강상의 문제나 외부의 압력에 따른 것이 아니라 출산과 양육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변화에서 기인한다.

지난해 여성부가 양육 미혼모 65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출산 이유로 ‘아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답한 미혼모는 22명으로 ‘낙태시기를 놓쳤거나 수술비용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답한 미혼모(22명)와 같은 수였다.

과거 낙태시기를 놓치거나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출산이나 입양을 택하는 미혼모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출산과 양육을 적극 선택하는 미혼모가 늘고 있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도 그룹홈에 거주하는 양육 미혼모의 75%가 양육 결심 동기를 ‘친엄마가 양육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고 답했다. ‘아기 친부와 결합할 예정이어서’라는 대답은 10.7%에 불과했다. 이는 양육 미혼모들은 아이 친부와의 결혼이나 재결합 여부와 관계없이 양육을 선택한 것을 보여준다.

최근 그룹홈을 나온 이모(28) 씨는 지난해 임신 사실을 알기 직전에 아이의 친부와 헤어졌다. 뒤늦게 출산 사실을 알게 된 친부는 재결합하지고 제안했다. 이 씨는 평생 독신으로 살 생각도 없고 ‘나중에 아이가 아빠 없는 아이라고 주위에서 손가락질 받으면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재결합은 단념했다. 당장 아이 키우기가 힘들다고 마음이 떠난 애인과 억지로 다시 합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여성부 가족지원팀 관계자는 “아직은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미혼모가 많지만 출산과 양육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미혼모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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