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세금전산망 ‘검은손’에 무방비

  • 입력 2007년 4월 14일 02시 55분


취득세나 등록세 등 부동산 관련 세금 징수 업무를 담당하는 서울 종로구청 세무담당 공무원이 전산망을 조작해 수억 원의 세금을 깎아 주고 뇌물을 챙겨 오다 경찰에 적발됐다.

현재 서울시의 각 자치구에서 운영하는 세금종합전산망은 담당 공무원이 자신이 부과한 세금뿐 아니라 동료가 부과한 세금까지 임의로 수정할 수 있다.

하지만 내부 비리를 막는 시스템은 마련해 놓지 않아 이번에 적발된 사건이 광범위하게 퍼진 비리 중 일부만 드러난 것일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간편한’ 세금 취소=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는 13일 종로구청 세무1과 7급 공무원 김모(48) 씨를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지난해 3월 숙박업을 하는 하모(66) 씨에게서 세금 감면 청탁과 함께 현금 150만 원을 받고 세무종합전산망에 접속해 하 씨와 그의 아내, 처남 명의로 부과된 부동산 취득세 및 토지세 1억1644만 원 가운데 1억554만 원을 감면해 줬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는 지난해 10월 자동차세와 주민세 등을 담당하는 세무2과로 옮길 때까지 11명에게 부과된 세금 3억7600만 원을 취소 또는 감면해 주고 3900만 원을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김 씨의 통장에 김 씨 명의로 입금한 돈이 1억1000만 원에 이르는데 이 돈 중 상당액도 세금 감면 대가로 받은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김 씨는 모두 30차례에 걸쳐 세금 부과 내용을 조작했는데 이 중 18차례는 동료 공무원이 부과한 것이었다.

현재 서울시의 전 구청이 운영하는 세금종합전산망은 부과·징수 담당 공무원이면 누구나 동료가 입력한 세금 내용까지 임의로 수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종로구청 세무1과의 부과·징수 담당 공무원은 19명이다.

경찰은 김 씨가 경마와 주식 등으로 1억4000여만 원의 빚을 져 지난해부터 봉급이 압류돼 왔다고 전했다.

▽내부 비리에 취약한 세무전산망=1994년 인천 북구청과 경기 부천시에서 100억여 원의 지방세를 횡령한 대형 세무비리 사건이 발생한 뒤 정부는 세무행정 전산화 작업에 나섰지만 여전히 허점투성이다.

무엇보다 징수된 세금을 취소할 때는 과장(1000만 원 미만) 또는 국장(1000만 원 이상)의 결재를 받도록 돼 있지만 김 씨처럼 이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

이중 부과나 입력 오류 등의 이유로 한 해 세금 액수가 변경되는 건수가 서울시에서만 52만여 건에 이르기 때문이다.

부과된 세금을 수정할 때는 누가, 언제, 얼마나 수정했는지 기록이 남지만 건수가 너무 많아 담당 직원이 고의로 결재를 누락하면 이를 찾아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지난해 여름 종로구청 세무1과도 감사를 받았지만 김 씨의 비리를 적발하지 못했다. 김 씨는 올해 1월 300여만 원의 취득세 납부와 관련해 상담을 받으러 온 A 씨에게 “150만 원을 주면 세금을 감면해 주겠다”고 말했다가 A 씨의 신고로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서울시는 “임의 수정을 막기 위해 결재 승인이 난 뒤에야 수정 입력이 가능하도록 전산 프로그램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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