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에 가족 책 읽는 소리 들리는 백마초교

  • 입력 2007년 4월 11일 17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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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7시 해가 저물어 어둑해질 무렵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 백마초등학교 2층 교실에 불이 환하게 켜졌다. 아침도 아닌데 등굣길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로 소란해졌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엄마, 아빠는 물론 형제자매들의 손까지 잡고 날아갈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캄캄해진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이들의 발길이 멈춘 곳은 이 학교 2층 도서관 '글마루'. '글로써 최고(마루)가 되자'는 뜻이다.

●한밤에 가족 책 읽는 소리 들리는 학교 도서관

이 '야간 독서객'들은 이 학교 1학년 5반 학생 가족들이었다. 백마초교는 2일부터 '학부모와 함께 하는 야간 도서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전 학년 36학급인 이 학교는 수업일마다 한 학급씩 가족단위로 학교도서관에서 책 읽는 프로그램을 연중 운영할 계획이다.

이날 참여한 것은 1학년 5반 어린이 28가족. 도서관에 들어선 가족들은 읽을 만한 책을 골라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취학 전 어린이를 데려온 가족은 바닥에 앉아 책 볼 수 있는 공간에 따로 모여 엎드리거나 앉은 채로 그림 동화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부모와 함께 온 1학년 채수진(7) 양은 "아빠가 집에서도 하루에 두 번씩 책을 읽어주시는데 학교에 와서 읽어주시니까 너무 좋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1만4500여 권의 책, 400여 종의 시청각 교재를 보유한 이 도서관은 교실3개 크기. 지난해 10월까지는 지금의 양지바른 곳이 아닌 건물 뒤편 응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난해 3월 부임한 황남연(60·여) 교장은 지금의 도서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교무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글마루 도서관을 마련했다. 올해 55회 졸업생을 배출했을 만큼 역사가 오랜 학교라 학교 건물 대부분이 낡았지만 교육청에서 환경개선용으로 지급한 예산은 도서관개선에 집중했다. 그 결과 1년여 만에 '빛나는' 도서관을 갖게 된 것.

낮 시간에는 아이들이 수시로 찾고, 밤에는 학부모와 함께 찾는 도서관이 되다보니 도서관 사서 일손이 크게 모자랐다. 이 문제는 학부모들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보람교사'라고 이름 붙여진 111명의 학부모가 순번제로 도서관에 나와 책 정리를 담당한다. 이들에게는 1인당 1권인 일반 대출 한도가 3권이 되는 '특혜'가 주어진다. 야간도서관 프로그램이 운영될 때는 담임교사와 사서교사, 보람교사 3명이 가족들을 돕는다. 이날 보람교사로 활동한 학부모 김미선(42·여) 씨는 "아이가 도서관과 책을 가까이 하게 하려면 부모의 노력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 자원했다"며 "힘들지만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아이와 도서관에 온 것만으로도 뿌듯"

형을 따라 온 동생은 신을 벗고 바닥에 앉아 엄마가 읽어주는 그림 동화책에 빠져들고, 동생과 함께 온 누나는 알아서 혼자 책을 읽었다. 올해 처음 초등학생이 된 자녀를 옆에 앉힌 아버지들은 '도서관에 왔다'는 사실에 더 상기된 표정이었다.

직장에서 곧장 퇴근해 양복을 입은 채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부모 이종현(37) 씨는 "평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시간이 없었지만 오늘 학교에서 특별한 독서시간이 마련돼 일찍 퇴근했다"며 "서둘러오느라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너무 기뻐해 보람찬 하루가 됐다"고 말했다.

부모들이 읽을만한 책도 비치되어 있지만 대부분 자녀들과 함께 책을 읽느라 어른용 책을 읽는 학부모는 드물었다.

학생들이 도서관을 더욱 친숙한 공간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 학교 측은 도서관에서 주1회 영화도 상영하고 도서관의 자료들을 이용해 시행하는 국어, 사회 과목 수업을 학급별로 학기당 1,2회 운영하고 있다.

황남연 교장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독서가 아이들에게 자연스러운 습관이 될 수 있도록 가족과 함께 찾아오는 도서관을 만들었다"며 "학부모님들이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고양=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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