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술비타민]글쓰기 훈련을 어떻게 할 것인가(3)

  • 입력 2007년 4월 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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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훈련의 첫 단계는 글을 분석적으로 이해하여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단계는 무엇일까요?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평가하는 글을 써 보는 것입니다. 이해한 내용을 비판적으로 따지면서 평가하도록 하는 문항은 대입 논술 초기부터 최근까지 가장 빈번하게 출제되는 유형입니다.

비판적 평가 능력을 측정하는 문제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관점에서 평가하고 따져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관점 가운데 어느 관점이 타당한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되 자신과 반대되는 관점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시오’(2007 성균관대), ‘제시문 (나)에 대한 평가를 포함하라’(2007 서울대), ‘(가)의 핵심어를 활용하여 (나)에 이야기된 현대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간추려 설명하고 그 주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2006 숙명여대) 등이 그 예입니다.

둘째는 어떤 관점을 정해 주고 그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따져보게 하는 것입니다. ‘(다)의 요지를 밝히고 (라)의 관점에서 (다)의 견해를 비판하고 모든 제시문을 참고하여 정의와 효율성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2007 고려대), ‘글 (라)의 관점에 근거하여 글 (마)의 주장이 타당한지에 대하여 논술하시오’(2007 중앙대), ‘(라)의 태도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다)의 시각에서 서술하시오’(2006 이화여대)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상적인 방식은 첫 번째 유형처럼 자신의 관점에서 평가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관점에서 평가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평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주관적 견해를 밝히지만 독자가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를 들어 설득력 있는 평가를 제시해야 합니다.

둘째 유형은 왜 출제되는 것일까요? 주제나 내용이 고등학생의 수준에서 나름의 관점을 갖고 판단하기에 어려운 경우, 혹은 학생 수준에서 판단할 수는 있지만 중구난방식의 평가가 나와 상대적으로 비교하기가 힘들 것으로 예상될 때 주로 출제됩니다. 둘째 유형은 정해준 관점을 잘 이해했는가도 더불어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채점의 객관성을 높이고 변별력을 살리는 데 유리합니다.

비판적 평가와 관련하여 하나는 바로잡아야 하겠습니다.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평가하라고 하면 무엇이 잘못인지 약점을 잡아내어 반박하고 반대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학생이 많습니다. 이것은 큰 오해입니다. 약점을 잡아내는 것도 중요한 과제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비판적 평가는 어디까지 맞고 어디부터 틀린 것인지, 의의는 무엇이고 한계는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규정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가 받아들여야 할 내용은 어디까지인지를 검토하여 정하는 과정입니다. 약점과 문제점만 들춰낼 경우 실제 논술에서 힘든 길을 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문제 1] 제시문 (가), (나), (다)의 세 인물(기자 랑베르, 신부 파늘루, 의사 리유)이 각각 역경에 대처하는 방식을 정리하고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자신의 인생관과 관련지어 비판적으로 논술하라.(2000년 서강대)

[문제 2] 아래 제시문들은 학문을 하는 이유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을 보여 주고 있다. (가)와 (나)와 (다)의 관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학문을 하는 이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1999년 이화여대 모의평가)

실제로 출제되었던 이 두 문제의 경우 비판적 접근을 반대하고 반박하는 것으로 오해할 경우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우선 문제 1에서 세 인물의 행동양식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각각의 약점을 골라내어 모두 거부하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 인물의 장단점을 다 따져본 후 한 인물을 자신의 인생관에 부합하는 대상으로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셋 다 거부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게 되면 자신의 생각과 유사한 인물까지 억지로 비판하는 무리수를 두게 됩니다. 문제 2의 경우를 볼까요? 원래 문제에서는 제시문에 ‘학문하는 이유’에 대한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세 관점이 나옵니다. 따라서 세 관점을 떠난 제4의 대안적 이유를 제시하는 것은 실제로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해한 상태에서 접근하게 되면 세 관점을 다 거부하고 제4의 관점을 제시해야 하는 과중한 과제에 시달리게 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비판적으로 평가한 결과 그 주장이 옳다는 결론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왜 이렇게 비판적 평가 문제가 대입 논술에 자주 나올까요? 비판적으로 따지고 평가하는 능력이 대학 공부에서 가장 기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대학에서는 이미 있는 지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곤란합니다. 마음껏 비판하고 따져보면서 자신의 관점과 시각을 형성해야 합니다. 어떤 권위와 힘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발로 서서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마음껏 따져볼 수 있는 권리, 이것이야말로 이해관계를 초월한 순수성을 간직한 대학인이 누려야 할 특권입니다. 그리고 이런 비판 능력이 있어야 학문과 사회의 발전이 가능해집니다.

비판적 평가에는 다양한 방식의 접근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꼭 적용해 보아야 할 필수적인 평가 기준들도 있습니다. 그 기준들이 무엇인지 다음에 살펴보도록 합시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의사소통교육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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