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섬마을 학교 복덩이래요”

  • 입력 2007년 3월 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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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학교 파이팅”경남 통영시 산양읍 산양초교 학림분교 선생님들과 전교생 8명이 5일 오전 입학식을 한 뒤 학교 정문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올해 유일한 신입생인 공휘원(7) 양. 통영=최재호 기자
“섬마을 학교 파이팅”
경남 통영시 산양읍 산양초교 학림분교 선생님들과 전교생 8명이 5일 오전 입학식을 한 뒤 학교 정문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올해 유일한 신입생인 공휘원(7) 양. 통영=최재호 기자
《신입생이 없어 올해 입학식을 치르지 못한 시골 초등학교가 102곳. 수년간 입학생이 없어 폐교 위기에 몰린 학교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농어촌에 국제결혼을 한 가정이 많아지면서 이들의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농촌 등에서 국제결혼이 크게 늘어난 시기가 약 5년 전임을 감안하면 시골 초등학교의 신입생 대부분이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가 될 날이 가까워 오고 있다.》

경남 통영여객터미널에서 뱃길로 40분 거리인 통영시 산양읍 저림리 학림도. 55가구에 주민 145명이 살고 있는 어촌에 5일 한바탕 축제가 벌어졌다.

이날 오전 11시 마을 주민 30여 명이 전교생 8명의 산양초등학교 학림분교로 모였다. 분교의 유일한 입학생인 공휘원(7·사진) 양의 입학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휘원이는 1996년부터 1년간 펜팔 교제 끝에 결혼한 공영식(48) 씨와 필리핀 출신 어머니 카롤리나 에스디컬(42) 씨의 막내딸.

입학식은 공 씨 부부를 비롯해 학부모, 마을 어촌계장, 보건지소장, 분교 선배 등이 참석한 가운데 30분 동안 진행됐다. 뭍에서 섬으로 출퇴근하는 교사 4명은 이날 남해상에 발령된 강풍주의보에도 불구하고 전날 특별 주문한 축하 케이크를 가지고 섬으로 들어왔다.

2∼6학년 언니 오빠들은 “사랑하는 동생이 와서 너무 좋다”는 그림편지를 읽은 뒤 휘원이에게 입맞춤을 했다.

공 씨 부부는 “학교에 다니고 싶어 2년간 분교에서 청강을 했던 딸아이가 입학을 한다니 너무 뿌듯하다”며 “또래 친구가 있으면 좋겠지만 오빠, 언니 같은 선배들이 있어 아무런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휘원이의 입학은 학림분교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전교생 8명 중 절반인 4명이 국제결혼 자녀로 이뤄진 것.

3학년인 휘원이의 오빠 휘윤(9) 군을 비롯해 김국권(39) 씨와 중국 출신 린원춘(34) 부부의 자녀인 성미(9·3학년), 해진(8·2학년) 자매가 나란히 학교에 다니고 있다. 학림도의 국제결혼 커플은 공 씨와 김 씨 부부가 전부. 하지만 학림도 역시 다른 농어촌처럼 젊은 부부가 드물어 학교에 국제결혼 자녀가 상대적으로 많다.

지난해에도 해진이가 학림도의 나 홀로 입학생이었으므로 학림분교는 2년째 국제결혼 가구의 자녀만 신입생으로 받아들인 셈이다.

분교 교사 윤부금(42·여) 씨는 “도시 학교는 국제결혼 자녀의 학교 부적응과 늦은 언어 학습 등으로 걱정이 많지만 아이들이 귀한 섬마을에서는 자연스레 부대끼다 보니 친형제, 친남매처럼 지내고 언어 발달도 빠르다”고 말했다.

분교에 자녀 2명이 재학 중인 최환수(46) 씨도 “아이들과 마을 주민 사이에는 혼혈이니 ‘코시안’이라는 용어가 없다”며 “외톨이로 자랄 뻔한 우리 아이에게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를 준 영식 형님과 국권이에게 고마울 따름”이라고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1960년대 후반까지 섬 주민 600명에 학생이 150명에 이르렀던 학림분교는 1970년대 중반부터 젊은이들이 섬을 떠나면서 1992년 분교로 격하됐다.

이후 2000년 전교생이 2명에 그치면서 한때 경남도교육청의 폐교 대상으로 거론됐다. 여기에다 즈믄둥이 휘원이의 출생 이후 이 마을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 것은 고작 2번으로 김 씨의 셋째 딸 미진(2) 양과 지난달 23일 태어난 막내아들 해주 군이 전부다.

한때 휘원이 밑으로 5년간 신입생을 받지 못해 곧 폐교가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으나 요즘 학림도 주민 사이에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

휘원이가 6학년이 되는 2012년 미진이가 입학하고 2014년에 해주가 입학해 분교의 명맥을 이어준다. 김 씨는 “마을을 위해서 뭍으로 떠나지 않고 아이들을 분교에 입학시킬 것”이라고 결정했다.

이 학교 졸업생인 전정권(48) 어촌계장은 “젊은이들이 속속 떠나는 조그마한 섬마을에 학교와 아이들은 주민의 활력소이자 마지막 남은 희망”이라며 “국제결혼 가구가 섬마을과 폐교 위기에 처한 분교를 살려내는 보물”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인근 산양읍 풍화리(미륵도) 산양초교 풍화분교에서도 강병국(7) 군이 나 홀로 입학을 했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병국이의 입학으로 풍화분교 역시 10명 중 2명이 국제결혼 가구의 자녀로 이뤄진 학교가 됐다.

경남도교육청은 “학생 60명 이하인 소규모 학교는 통폐합 대상이지만 학림분교처럼 도서 벽지 학교는 학부모가 반대할 경우 학생이 1명뿐이더라도 폐교시키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통영=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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