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갈등 확산에 부담…이필상 고려대 총장 결국 사퇴

  • 입력 2007년 2월 16일 03시 00분


지난해 12월 21일 16대 총장으로 취임한 이필상 총장은 역대 고려대 총장 중 가장 짧은 기간 재임한 총장이 됐다.

이 총장은 지난해 12월 21일 ‘시민운동가 총장’ ‘20년 만에 비고려대 학부출신 총장’ 등의 평가와 함께 취임했다.

그러나 취임 닷새 만인 12월 26일 이 총장이 1988년 교내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들이 먼저 발표된 제자들의 논문을 표절한 것이라는 의혹이 언론에 의해 제기됐다.

교수의회는 곧 이 총장의 논문을 조사하기 위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고 조사위는 이 총장의 논문 6편은 표절, 2편은 중복 게재됐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후 교수의회는 두 차례 회의를 열었으나 표절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이달 2일 조사보고서와 이 총장의 소명서를 학교법인에 제출하기로 했다.

그러나 ‘표절 논란’이 ‘음모론’으로 번지면서 사태가 확산됐다. 1월 24일 조사위 조사결과가 일부 유출되자 이 총장 측은 “교수의회 의장단이 총장의 소명도 없이 ‘표절’ 결론을 유출시켰다”면서 “조사결과를 신뢰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 총장은 또 교수의회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취임 전 경영대 교수들로부터 사퇴 협박을 받았으며 이들이 말하는 ‘후배’가 조사위원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 후 오히려 교수들 간의 갈등이 불거져 “의도적인 총장 흔들기”, “표절 논란에 물 타기”라는 공방이 오갔다. 게다가 교수의회 의원들이 “의장단이 편파적으로 ‘표절’ 결론으로 몰아간다”면서 의장에 대한 해임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표절 의혹을 불식하기 위한 반격이 오히려 교수들 간의 갈등으로 확산되자 이 총장은 이달 9일 ‘재신임투표’를 제안했다. 표절 의혹과 증폭된 갈등을 모두 묶어 ‘자신을 총장으로 신임하는지’에 대해 투표로 판가름하자는 것.

그러나 일부 단과대 교수들이 집단으로 반발하며 “투표 철회와 총장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또 투표를 전후해 이 대학 재단 현승종 이사장의 투표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알려졌고 15일 교우회까지 이 총장의 ‘지도력 상실’을 지적하고 나서면서 더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 총장은 결국 자신이 버티면 버틸수록 논란이 확산돼 학교에 타격을 주는 것을 보고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대는 이 사건을 계기로 논문 표절에 대한 윤리 기준을 마련하는 한편 총장 선출 시 논문에 대한 검증 절차를 강화할 방침이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 현승종 이사장 문답

“총장 직선-간선제 많은 문제 노출”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현승종(사진) 이사장은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필상 고려대 총장의 사표를 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그동안 방침을 발표하지 않은 이유는….

“사전에 방침이 노출되면 논란만 늘기 때문에 발표하지 않았다. 이 총장께서 자진 사퇴를 결심하셨다. 재단 이사장으로서 이 총장이 표명한 자진 사퇴 의사에 대해 이른 시일 내에 조치를 취하겠다.”

―사표는 수리한 것인가.

“사실상 사표를 수리한 것으로 보면 된다.”

―논문 표절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하면 이미 시효가 지나 소멸된 문제다. 일반 교수면 문제가 안 되는 것인데 총장이기 때문에 도의적 책임을 느껴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앞으로 표절 문제를 더는 거론하지 않겠다.”

―이 총장과 의견 교환은 없었나.

“의견 교환이 있었다. 오늘 오후 1시 이 총장과 통화를 했다. 사의를 표명하기에 잘 결정하셨다고 말했다. 신임 투표에 대해선 사전에 논의한 적이 없다. 24일 졸업식까지 끝마치고 물러나 줬으면 하는 개인적 희망이 있다.”

―직무 권한 대행은 어떻게 되나.

“교무부총장이 맡을 것이다.”

―총장 선출 방식을 바꾸나.

“직선제, 간선제 모두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교육법상 총장 임명은 재단이사장의 권한이다. 원칙대로 하려고 한다. 사견이지만 지명제로 돌아갔으면 한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 표절 논란 이필상 고대총장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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