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억울” 법관 계획적 습격 ‘충격’

  • 입력 2007년 1월 16일 03시 01분


응급실의 부장판사 1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자택 앞에서 판결에 불만을 품은 전직 대학교수 김명호 씨가 쏜 석궁 화살에 배를 맞은 박홍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서울 강남구 서울의료원 응급실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은 뒤 누워 있다. 박영대 기자
응급실의 부장판사
1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자택 앞에서 판결에 불만을 품은 전직 대학교수 김명호 씨가 쏜 석궁 화살에 배를 맞은 박홍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서울 강남구 서울의료원 응급실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은 뒤 누워 있다. 박영대 기자
서울 모 사립대 전직 교수가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석궁으로 습격한 사건은 재임용 탈락에 불복해 낸 소송에서 패소한 것에 앙심을 품고 사전 준비 아래 저지른 보복 테러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사건 전말=전직 대학교수 김명호(50) 씨는 15일 오후 6시경 서울 송파구 잠실동 W 아파트 12동 1층과 2층 사이 계단에서 박홍우 부장판사가 퇴근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 씨는 오후 6시 33분경 박 부장판사가 관용차에서 내린 뒤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박 부장판사를 불렀다. 뒤돌아보는 박 부장판사에게 김 씨는 갖고 간 70cm 길이의 검은색 철제 석궁을 겨누며 위협했고, 박 부장판사는 가방을 들어 가로막으며 실랑이가 벌어졌다.

1.5m쯤 떨어진 거리에서 김 씨는 화살 1발을 쏘았고, 이는 박 부장판사의 배꼽 왼쪽 아래 부분에 맞았다. 박 부장판사가 무릎을 꿇고 쓰러지자 김 씨는 박 부장판사의 어깨를 붙잡고 뭔가 얘기를 하려 했고 그 순간 뒤쫓아 온 박 부장판사의 운전사인 문모 씨와 아파트 경비원 김덕환(61) 씨에게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김 씨는 붙잡혀 가면서 “국민의 이름으로 판사를 처단하려 했다”고 소리쳤고, 서울 송파경찰서로 연행된 뒤에도 “법을 무시하는 판사들, 사법부가 얼마나 썩었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합법적인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6개월 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근처에서 40만 원을 주고 취미용으로 석궁을 샀으며, 박 부장판사를 살해할 의도로 구입한 것은 아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석궁을 쏜 거리가 너무 가까워 살인미수죄를 적용할 수 있을지는 검토해봐야 한다”며 “살인미수죄 적용이 안 되면 중상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 전 교수, 법원에 강한 불만=1996년 교수 재임용 탈락 후 뉴질랜드와 미국 등지에서 무보수 연구교수로 일하다 2005년 3월 귀국한 김 씨는 “대법원이 1986년 ‘재임용은 학교 측의 자유재량권에 속한다’는 판결을 내리는 바람에 해직 교수가 복직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2005년 8월부터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왔다.

또한 김 씨는 최근 이용훈 대법원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 대법원장이 지난해 11월 지방법원 순시 과정에서 검사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때마침 김 씨는 박 부장판사를 습격한 15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소환돼 고발인 조사를 받았다.

당초 김 씨는 오후 2시에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조사 시간을 오전으로 앞당겨 달라고 요청해 오전에 조사를 받고 돌아갔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박 부장판사를 습격하려고 미리 계획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조사 시간을 오후에서 오전으로 당겨 달라고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피습 직후 서울 강남구 서울의료원으로 옮겨진 박 부장판사는 응급치료를 받은 뒤 오후 8시 50분경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의 1인용 특실로 병실을 옮겼다. 장기에 손상을 입을 정도로 상처가 깊지는 않아 중상이 아니라는 게 병원 측 설명이다.

사건 직후 보고를 받은 이 대법원장은 오후 8시 반경 서울의료원을 찾아 박 판사의 상태를 살펴보고 돌아갔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석궁, 20m거리서 10cm 송판도 관통

총 같은 활… 근접 발사땐 위력 떨어져▼

석궁(石弓·사진)은 나무 또는 철재로 만든 활이다. 활 가운데 부분에 화살이 날아가는 방향을 정하는 홈이 팬 자루 모양의 받침대와 시위를 당겼다가 놓는 장치가 붙어 있다.

명중률이 뛰어나고 20m 정도의 거리에서 두께 10cm가량의 송판을 관통할 정도로 위력이 강해 총과 양궁의 장점을 모두 갖춘 무기로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식 무기가 개발되기 전까지 전장(戰場)에서 많이 사용됐다. 발사할 때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아 지금도 특수부대에서는 저격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최대사거리는 약 270m이며 유효사거리는 50∼60m.

그러나 발사된 화살이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한 거리가 필요해 오히려 너무 근접해 발사하면 위력이 떨어진다.

이런 파괴력 때문에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으로 소지와 사용에 규제를 받고 있지만 초보자도 10여 분이면 배울 수 있어 최근에는 주로 사냥 및 스포츠 레저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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