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은 처음에 “멀쩡한 담장을 왜 허무냐”며 반대가 심했다. 도로변이라 소음이 크지는 않을지, 도둑에 무방비 상태가 되진 않을지 불안해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입주자 대표 임형성(46) 씨는 “이웃끼리 서로 얼굴도 모르고 살았는데 공통의 화제가 생기면서 왕래가 잦아졌다”며 “이제는 관리비로 모은 기금 3000만 원까지 들여 화단을 가꾸는 등 주민이 먼저 나선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에는 구로구 신도림동 우성아파트 등 10여 곳이 담장을 허물었거나 허물고 있다. 담을 허문 아파트들이 생활환경이 좋아져 값이 오르자 담장 허물기를 추진하는 곳도 11개구 42개 단지로 늘었다. 서울시는 예산 30억 원을 확보해 내년에 16개 아파트 단지의 담 허물기를 지원할 예정이다.
자다가 일어나 차를 빼 줘야 하는 일도 있고, 아침에 나가 보면 차가 부서져 있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10월 주택 담장을 허물어 주차난을 더는 ‘그린파킹’ 사업이 시작된 후 상황은 달라졌다.
주차 공간이 2배 이상 늘고, 골목길이 말끔히 정비되면서 이웃끼리 얼굴 붉힐 일이 없어진 것은 물론이고 높았던 마음의 벽도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
주민 박영호(53·여) 씨는 “이제는 골목이 지저분하면 내 집 네 집 할 것 없이 서로 치운다”며 “내년 여름엔 이웃 마당을 돌며 먹을 것을 나눠 먹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에는 주차난을 덜기 위해 올해만 해도 364개 골목, 주택 4667동의 담장이 헐렸다. 서울시는 2012년까지 모든 주택가를 ‘그린파킹’ 마을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
노원구 공릉동 서울산업대는 지난해 캠퍼스를 둘러싼 회색 담장을 시원스레 털었다. 대신 나무를 심고 벤치를 놓아 휴식공간을 만들었다. 인근 아파트 쪽으로는 통로도 새로 냈다.
지역 주민들은 ‘우리 공원’과 ‘우리 학교’를 동시에 얻었다. 공원 산책하듯 대학 앞을 지날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대학이 한결 친근해진 것.
산업대 옆 동부아파트에 사는 김금임(55·여) 씨는 “학교를 자주 찾아도 예전엔 이방인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이젠 동네 공원처럼 편하게 드나들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서울에는 2002년부터 고려대, 숭실대 등 13곳이 담장을 허물었고, 한양대 등 4곳이 공사를 하고 있거나 추진 중이다. 서울시는 앞으로 서울 소재 42개 대학의 담장 허물기를 시비로 전액 지원할 계획이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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