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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1월 2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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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빡이’ 코너의 무대부터 살펴보자. 무대 장치라곤 조명, 밴드. 개그맨, 관중이 전부이다. 단순한 구성이다. 대사도 별로 없다. “이 개그는 이게 다여∼”라는 마지막 대사가 이를 대변해준다. 이러한 개그가 시선을 끄는 표면적인 이유는 시청자들이 그동안 수없이 나왔던 말장난, 농담 따먹기 식 수다 개그에 대해 식상해 있기 때문이다.
‘마빡이’는 단순하지만 자학적인 이른바 슬랩스틱코미디(slapstick comedy·코미디의 한 종류로 과장된 행동이나 용어로 관객을 웃기는 것)의 전형을 보여 준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이유를 넘어 ‘마빡이’에는 무엇인가 인간 심리와 사회를 꿰뚫는 본질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마빡이’는 시청자가 원하는 개그 코드의 꼭짓점에 있는 동시에 한국 개그산업의 꼭짓점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꼭짓점은 무엇인가.
젊은 시청자들은 인터넷 세대이다. 무엇이든 빠른 것을 추구한다. 인터넷을 하면서 마우스의 클릭 버튼을 반복해 누를 때 느끼는 재미는 ‘마빡이’의 단순하고 즉흥적인 반복 동작과 고스란히 겹친다. 단순 반복이 젊은 층에 어떤 동질감을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단순’ 개그가 말 그대로 ‘단순하게’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현재 개그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지는 시스템은 완벽한 개방형 경쟁체제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개그가 무대에 서려면 개그맨들 사이에 치열한 내부 경쟁을 거쳐야만 한다. 기존의 스타 개그맨들도 경쟁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면 퇴출되는 것이다.
방송에서 보여 주는 개그는 3초 혹은 늦어도 5초에 한 번씩 시청자들의 웃음을 터뜨려야 한다. 당연히 젊은 시청자들의 처지에서는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새로운 웃음을 주지 못하면 해당 코너는 곧바로 다른 코너로 대체된다. 개그 코너들의 이런 빠른 회전성으로 말미암아 ‘늘 새로운 것을 소비한다’는 시청자들의 심리적 만족감이 충족된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은 또 다른 역설을 품고 있다. 공개코미디의 빠른 회전성과 경쟁 시스템은 더 빠르고 더 자극적인 소재들을 원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당연히 코너의 수명이 짧은 만큼 개그맨의 수명도 짧아진다. 이는 마치 제 살 깎아 먹기와 같은 것이다. 아무리 웃기는 코너라도 유효기간은 6개월이다. 젊은 시청자들이 자꾸만 새로운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인기 코너가 없다는 것은 끊임없이 신인 개그맨 발굴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결국엔 더 빠른 호흡을 갖춘 경쟁 시스템이 가동되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새로움만을 추구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전 연령층을 포괄할 만한 개그 문화가 사라지게 된다. 더욱이 중장년층은 그들의 개그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중장년층이 어디서 웃어야 할지 망설이는 동안에 세대 간 소통 단절이 초래된다. 50대 아저씨, 아줌마가 ‘마빡이’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과연 그 단순성에 웃을까. 장담하기 힘들다.
물론 완전 경쟁시스템을 핵심으로 하는 개그 프로그램의 제작방식이 과거와는 달리 모든 개그맨에게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신인이라도 아이디어와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출연 기회를 보장받기 때문이다.
‘마빡이’ 열풍은 놀랄 만하다. 하지만 ‘마빡이’ 열풍, 그 속에 숨은 단순성과 자학성은 혹시 복잡함을 싫어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
우리 인간에게 웃음은 소홀히 할 수 없는 요소이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웃음’이란 어떤 웃음일까.
정용휴 인천 대건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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