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우리학교 논술수업]금산여중의 토요일 ‘공동학습’

  • 입력 2006년 10월 1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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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금산군 금산여중 학생들이 9일 학교 컴퓨터실에서 다른 학생들이 올린 글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금산여중은 학교 인터넷 홈페이지에 전교생이 쓴 글을 공개하고 자유롭게 열람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의 글쓰기 경쟁을 유도한다. 금산=이승재 기자
충남 금산군 금산여중 학생들이 9일 학교 컴퓨터실에서 다른 학생들이 올린 글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금산여중은 학교 인터넷 홈페이지에 전교생이 쓴 글을 공개하고 자유롭게 열람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의 글쓰기 경쟁을 유도한다. 금산=이승재 기자
《2008학년도 입시부터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주요 대학이 도입하는 통합교과형 논술을 두고 일선 교사들이 난감해하고 있다. 마땅한 교재나 교수법이 없는 상황에서 여러 과목을 넘나드는 논술 강의를 어떻게 해야 할지 여간 고민이 큰 게 아니다. ‘이지논술’은 나름의 방식으로 알차게 논술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공교육 현장을 격주 시리즈로 소개한다.》

토요일이던 지난달 16일, 충남 금산군 금산여중 1∼3학년 학생들은 금산군청이 운영하는 문화시설인 다락원 대공연장에서 영화 ‘노인과 바다’를 보았다. 관람 후 전교생은 학교가 배포한 영화 관련 체크리스트에 답을 적어 넣었다.

3학년 2반 곽윤미 양도 예외는 아니었다. 곽 양은 체크리스트(표 참조)를 작성한 뒤 이 영화에 대한 1000자가량의 감상문을 썼다. 사회 과목을 맡고 있는 담임 김성자 교사는 곽 양이 ‘저렇게 허무하게 끝나 버릴 것을 (노인은) 도대체 왜 끌려 다니면서까지 고기에게 집착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고 쓴 부분에 밑줄을 그은 뒤 말미에 이렇게 의견을 적었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노인이 고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투를 벌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노인의 희망과 삶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삶은 고통의 연속이지만 희망이 있기에 가치가 있답니다.’

전교생이 쓴 영화감상록은 담임, 학년부장, 교감의 첨삭지도와 서명을 거쳐 최종적으로 강석호 교장에게 간다. 교장은 학생들의 글을 빠짐없이 읽고 나서 서명을 한 후 학생들에게 돌려준다. 교장 역시 학생의 글에 첨삭지도를 한다.

금산여중의 글쓰기 지도는 간단명료한 한 가지 원칙 아래 진행된다. ‘학생들이 겪는 모든 체험, 행사, 행위를 빠짐없이 글로 옮기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학교는 토요일을 글쓰기 교육 수업으로 활용한다. ‘놀토’(노는 토요일)가 아닌 토요일에 잡힌 ‘공동학습’ 시간을 통해 △영화감상(월 1회) △최고경영자(CEO) 특강(월 1회) △독서록 관리를 하고 예외 없이 학생들의 글을 받아 첨삭 지도한다. 학생들의 글쓰기 과제 제출률은 80% 선.

금산여중 글쓰기 교육의 ‘내밀한’ 특징은 학생들이 동료들과 경쟁의식을 갖도록 유도한다는 데 있다. 학생들은 모든 글쓰기 과제물을 학교 홈페이지(geumsan-g.ms.kr)에 올린다. 글은 일련번호를 부여받아 과제별로 마련된 파일에 저장된다. 결국 학생들은 다른 학생이 글을 올린 시간과 글의 내용, 그 글에 대한 조회 수까지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어 자연스럽게 경쟁의식이 싹튼다는 것. 이 학교 홈페이지를 열면 첫 화면에는 학교 측의 ‘공지사항’이 아닌 학생들이 가장 최근에 올린 글과 올린 학생의 이름이 뜰 정도.

글쓰기에 큰 관심이 없던 3학년 박지선 양의 성장도 이런 ‘아름다운 경쟁’이 빚어낸 작품이다. 박 양은 홈페이지를 통해 평소 글 잘 쓰기로 소문난 같은 학년 윤지원 양의 글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윤 양보다 ‘더 잘 쓰고’ 싶은 생각에 때론 흉내도 내고 때론 자기만의 생각을 담아 보기도 하면서 박 양의 글 솜씨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결국 9월에는 ‘효 백일장’에서 교육감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수도권 아이들은 우리보다 학원에 더 많이 다니기 때문에 특히 논술은 마음속으로 늘 불안했어요. 저도 학원을 안 다니고요. 하지만 영화와 독서 감상문에 담임선생님은 물론 교장선생님의 첨삭지도까지 받으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3학년 손단비 양)

금산여중은 동아일보가 발행하는 논술전문 섹션인 ‘이지논술’을 학생들의 글쓰기 학습에 지혜롭게 활용하고 있다. 학생들은 독서·논술 지도담당인 류재숙 교사에게서 매주 이지논술의 문제를 풀어 보는 과제를 받는다. 일부 학생은 다시 이지논술 인터넷 사이트(www.easynonsul.com)에 글을 자발적으로 응모해 무료로 제공되는 첨삭지도를 받기도 한다. 전교생 336명 중 95%인 318명이 이지논술 온라인 사이트의 회원. 5월 ‘인권’에 대한 생각을 써 보는 이지논술의 첨삭지도 문제에 응모해 뽑힌 25명의 중학생 중 15명이 이 학교 학생이었을 정도다.

또 학생들은 클래식이나 세미클래식을 들려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내고 음악을 신청하는 과제를 방학에 받는다. 친구와 선생님의 안부를 묻거나 자신의 사연을 담은 짧은 글을 신청곡과 함께 방송국 인터넷 홈페이지에 보낸 후 동일한 내용을 학교 홈페이지에 올린다. “감성적인 짧은 글을 쓰는 훈련과 더불어 음악적 교양을 쌓을 수 있다”는 게 학교 측의 설명.

이 학교 강석호 교장은 교사들에게서 “글 쓰는 데 한이 맺힌 사람 같다”는 ‘기분 좋은’ 핀잔을 듣는다. 그는 “학생들이 모두 좋은 대학에 가기를 바랄 수는 없어요. 글쓰기는 대학 입시만을 위한 게 아니에요”라면서 “아이들이 앞으로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더라도 신문이나 방송에 자기 생각을 담은 짧은 에세이 하나 보낼 정도는 되어야 자기 인생을 산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금산여중 곽윤미 양이 작성한 영화 ‘노인과 바다’ 체크리스트
항목답변
6번. 노인이 고기를 잡지 못한 이유는?가. 주변 사람의 생각: 나이 탓 나. 노인의 생각: 불운 탓
12번. 달(月)이 여자와 바다에 주는 영향은?가. 여자: 월경 나. 바다: 밀물, 썰물
13번. 노인이 고기와 사투를 벌인 시간은?( 3 )일 ( 21 )시간가량
15번. 노인이 고기와 싸우면서 사용한 도구들을 순서대로 써 봅시다.(낚싯대) - (작살) - (칼) - (노)
17번. 노인의 꿈에 나타난 동물과 그 동물이 상징하는 의미는?가. 동물: 사자 나. 상징 의미: 힘
18번. 인상적인 대사는?가. 행운을 파는 곳이 있으면 좀 샀으면 좋겠다. 나. 노인은 하루를 더 많이 살기 위해 일찍 일어난다.
19번.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과, 그 일을 극복하면서 아쉬웠던 점을 써 봅시다.가. 어려웠던 일: 공부 나. 아쉬운 점: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던 것

금산=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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