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돈, 공장이 빠져나간다

  • 입력 2006년 9월 24일 19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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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후 시중은행에서 5년 간 일했던 조모(33) 씨는 지난달 말 미국으로 떠났다.

경영학석사 학위(MBA)를 따 누나가 살고 있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직장을 구해 눌러앉는다는 계획이다. 조 씨는 "한국에선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적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빠져나가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내국인이 해외에 나가 공장건설 등에 투자한 해외직접투자 금액이 외국인의 한국 투자금액을 훌쩍 뛰어넘는 등 '공장'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다. 증권시장에서도 주식을 팔고 나가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국제인구이동 통계에 따르면 내외국인을 합쳐 지난해 국내로 들어온 장기입국자(90일 이상 체류)보다 한국을 떠난 장기출국자는 8만1000명 더 많았다. 이 중 20대 이하는 86.7%에 이른다. 지난해 유학 연수목적 장기출국자는 사상 처음으로 10만 명을 넘어섰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처럼 사람이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고(高) 학력자의 '두뇌 유출' 현상이 심화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올해 초 중국 내 투자법인인 하이닉스·ST반도체유한공사에 2억 달러(약 1900억 원)를 추가 투자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중국정부가 제시한 10억 달러 융자 약속 등 각종 투자유치 정책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1~6월) 한국인의 해외 직접투자는 70억8000만 달러로 같은 기간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직접투자 49억1700만 달러보다 21억6300만 달러 많았다. 게다가 정부가 해외 부동산투자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있어 해외 직접투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증권시장에서도 외국인들의 돈은 밀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주식을 팔고 나가는 데다 한국 투자자들은 해외주식과 채권에 적극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7월까지 증권투자수지는 사상 최대인 164억 달러(약 15조 원)의 유출 초과를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기업이 해외에 공장을 짓고 투자를 늘리는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지만 인재와 돈, 공장이 과도하게 빠져나가는 현상이 계속되면 '한국경제의 공동화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본부장은 "해외로 빠져나가는 인재와 돈을 잡기 위해 금융 교육 의료 등 고급 서비스업을 과감히 개방해 경쟁력을 빠른 속도로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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