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하원칙에 맞춰 물어봐야지” 조 前고법부장, 검사에 면박

  • 입력 2006년 8월 9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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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 내용은 너무 어마어마해 허구가 아니면 (내가) 저지를 수 없다.”

8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318호 법정.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를 받고 있는 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사시 기수로 4년 후배인 이상주 영장담당 부장판사 앞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사법사상 초유의 풍경이었다.

▽조 전 부장판사 “검찰 수사는 허구”=오후 2시경 법정에 들어서던 조 전 부장판사는 몰려든 취재진에게 “검찰 수사 내용은 허구”라고 주장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영장심사에서는 검찰 측과 조 전 부장판사 간에 오간 날카로운 고성이 법정 밖까지 흘러나왔다.

조 전 부장판사는 “6하원칙에 따라 물어봐야 대답을 하지 ‘기억이 안 난다’는 대답밖에 할 수 없는 질문만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검사에게 면박을 주기도 했다.

영장심사는 두 차례나 휴정을 하면서 6시간 넘게 이어져 오후 8시 50분경 끝났다. 검찰 측은 검사 2명이 2000쪽이 넘는 사건 기록을 토대로 300개에 이르는 질문을 던졌고, 조 전 부장판사의 변호인들도 반대신문에 나섰다.

조 전 부장판사는 영장심사에 앞서 취재진에게 “이유가 어찌됐건 국민과 사법부에 누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다.

한편 민오기 전 서울서대문경찰서장도 혐의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나섰고, 김영광 전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모든 혐의를 깨끗이 시인했다.

▽영장발부 판사 “참담한 심정이다”=3시간 가량 기록을 검토한 뒤 밤 11시 50분경 영장을 발부한 이상주 부장판사는 기자들과 만나 “참담한 심정이며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어 힘들었다”며 “앞으로 이런 사건은 없겠죠”라고 선배 판사의 구속영장을 발부하게 된 복잡한 심경을 털어놨다.

그는 “고도의 청렴성과 도덕성이 요구되는 고위 법관의 범행이고 액수도 거액이다. 참고인들과의 부적절한 접촉과 그들에 대한 금품 제공으로 인한 진술 번복 등도 고려했다”고 조 전 부장판사의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조 전 부장판사의 경우 나보고 판결을 하라고 하면 다 유죄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여론을 참조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홍수 씨의 진술을 믿을 수 있는지를 놓고 계속 다툴 것 같다”면서 “김 씨의 진술이 한 번 바뀐 데다, 공판 전 증인 신문도 2번 다 진술을 거부했는데 이런 사람의 진술을 그대로 믿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또 “검찰이 수표 추적을 계속 했는데 아직 수표가 안 나왔다”며 “분명히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고도 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구속영장에 나타난 혐의 요지

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 3명은 9일 오전 서울 성동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다음은 구속영장 요지.

▽조 전 부장판사=김홍수 씨에게서 다른 판사가 맡고 있는 민사신청, 형사, 행정, 민사본안 등 총 4건의 사건이 잘 해결되도록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1억1000여만 원, 전별금 등 명목으로 2200만 원 등 총 1억3200만 원의 금품을 수수.

2002년 2월경 “‘카드깡’을 하다 구속된 사람을 보석으로 석방되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보석 신청서를 담당 재판부에 내도록 가르쳐 줌. 실제로 석방되자 같은 해 5, 6월 7000만 원 상당의 수입가구 2점과 카펫 2장을 받음.

2003년 12월∼2004년 5월에 “양평 TPC골프장 사업권과 관련한 재판이 유리하게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소송 당사자에게서 3차례에 걸쳐 1500만 원을 받음.

2002년 3월 서울 서초구 유흥주점에서 김 씨가 “주변 사람의 사건 해결을 도와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계속 도와달라”는 취지로 준 200만 원 등 2001년 10월∼2005년 4월 12차례에 걸쳐 용돈 전별금 명절떡값 휴가비 명목으로 2200만 원을 받음.

▽김영광 전 서울중앙지검 검사=2005년 1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내사 중이던 김 씨에게서 “선처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500만 원, 같은 해 3월 김 씨의 승용차 안에서 500만 원을 각각 받음.

▽민오기 전 서울서대문경찰서장=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장으로 재직하던 2005년 1월 서울 강남의 한 유흥주점 주차장에서 “하이닉스 주식을 매도한 40억 원을 갖고 행방을 감춘 박모 씨를 수사해 처벌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3000만 원을 받음.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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