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간 ‘밥상머리 토론’ 배만 부를까요?

  • 입력 2006년 7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엄마, 오늘 ○○가 선생님한테 혼났어.”

“왜?”

“아침에 게임하려고 PC방 갔다 지각해서.”

“너희는 게임이 왜 그렇게 좋은데?”

“스트레스 풀리니까.”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 게임밖에 없을까?”

“그럼요.”

“…….”

모처럼 아이와 가진 진지한 대화는 어색하게 막을 내렸다.

엄마의 말을 꾸짖음으로 느꼈는지 아이는 “그럼요”라는 강하고 짤막한 말을 내던졌다. 대화가 당초 예상과 어긋나자 엄마는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 부모부터 토론의 묘미 익혀야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몇 차례 시도하다 체념한 경험을 지닌 엄마들이 적지 않다.

논술학원보다는 가족 토론을 통해 아이의 사고력을 키워주겠다는 야무진 꿈을 갖고 있는 주부 김희정(40·서울 강남구 삼성동) 씨. 김 씨는 아이와 토론을 시도했지만 5분 이상 계속하지 못하고 좌절하고 만다.

김 씨는 “내가 의도한 답을 아이가 주지 못하거나 엄마 얘기에 집중하지 않는 아이를 보면 더 대화할 기분이 들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여름방학을 맞아 아이와 함께 다시 토론을 시도할 작정이지만 걱정부터 앞선다.

전문가들은 가족토론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가족 간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먼저 만들라고 조언한다. ‘원탁토론아카데미’의 강치원(강원대 사학과) 교수는 “아이 말에 부모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아이는 곧 흥미를 잃고 가족토론은 일방적인 훈계나 반발로 끝나기 쉽다”고 말했다.

가족토론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토론을 이끄는 당사자인 부모가 토론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최일권 변호사의 창의토론센터’를 이끌고 있는 최일권 변호사는 “토론은 대립점이 명백해 상대방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토론을 효과적으로 진행하려면 토론을 이끄는 부모가 먼저 토론의 묘미를 익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 서로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전제되어 있다면 다소 서툰 운영의 기술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며 “부모가 준비가 덜 된 상황이라면 실전토론에 활용할 수 있는 몇 가지 기술적 규칙을 가족끼리 정해 토론을 시작해 보라”고 조언했다.

● 우호적 분위기 조성돼야

입시전문가들은 가족 간의 대화를 토론으로 이끌면 훌륭한 논술 준비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청솔학원 평가연구소’ 오종운 소장은 “대학에서 논술을 통해 요구하는 학생들의 능력은 제시문 이해와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이라며 “토론을 통해 상대방의 주장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논지파악 능력과 비판적 사고력이 자연스럽게 길러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토론의 궁극적인 목적이 논술을 위한 것이라도 가족토론은 좀 더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방학을 맞아 아이와 밥상을 같이할 시간이 많아진 만큼 ‘밥상토론’을 시도해 보자.

밥상토론의 소재는 생활 곳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처음 토론을 시작할 때는 가급적 폭넓은 배경 지식이 필요한 주제를 피하는 것이 좋다. 가족토론은 단순한 생각의 교류에서 시작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가족 간의 아픔이나 고민을 확인할 수 있는 주제, 예컨대 부모의 경우 평생직장의 문제, 아이들의 경우 인터넷 게임이나 집단 따돌림 등의 소재가 적합하다.

최 변호사는 “간혹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시위 등 사회적 관심도가 높은 주제를 택할 경우는 아이의 지식을 묻기보다는 감정이나 느낌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아이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제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 교수는 “미리 토론 주제를 줘 아이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거나 질문 리스트를 만들어 보게 하라”고 제안했다.

대화가 중간에 끊기더라도 당황할 필요는 없다. 부모가 너무 일방적인 주장을 했거나 아이 수준에 걸맞지 않은 대답을 요구하면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같이 생각해 보자”며 아이와 함께 고민하며 풀어나가도록 하자.

박완정 사외기자 tyra21@naver.com

밥상토론 5계명

가족토론은 공적인 토론보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배려가 더 필요하다. 서로 신뢰감을 높일 수 있는 몇 가지 규칙을 정해두면 토론이 훨씬 수월해진다.

[1] 음성 예고제=목청이 높아지다 보면 토론이 감정싸움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목소리 톤이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상대방에게 경고를 주는 음성 예고제를 시행해보자.

[2] 말투 예고제=‘네가 그러면 그렇지’, ‘너는 그게 문제야’ 등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하는 극단적인 말투가 나오면 이를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말투 예고제를 도입해보자. 예고를 받은 횟수를 기록하면 토론이 거듭될수록 상대방을 자극하는 말투가 줄어들게 마련이다.

[3] 3자 화법의 활용=사안이 민감하거나 대놓고 반대하기 어려운 대목에선 ‘누구누구는 이렇게 말하기도 하던데 너의 의견은 어떠냐’는 식의 3자 화법을 이용해 풀어가자.

[4] 찬반 균형제=토론은 전체적으로 상대에 대한 반박과 이해(찬성)가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토론이 끝난 뒤 상대에 대한 반박과 찬성을 요약한 토론 요약서를 만들어보자.

[5] 끼어들기 금지 및 발언시간 준수=토론 시 발언 순서를 정하는 것도 좋지만 이는 자칫 토론을 딱딱하게 몰고 갈 수도 있다. 발언 순서를 탄력적으로 운영하자. 다만 상대방이 말하는 중간에 끼어드는 것을 금지하고 발언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도록 하자.

(도움말: 최일권 변호사의 창의토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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