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태경]문제만 잘푸는게 공부는 아니다

  • 입력 2006년 7월 1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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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사교육에 길들여져 가는 이 시대, 우리는 문제점을 과다한 교육비에서 찾지만 교육 내부를 보면 더 심각한 현상이 있다. 공부는 있으되 ‘반추하는 공부’는 없고, 지식은 있으되 ‘숙성된 지식’은 없다는 점이다.

요즘 학생의 공부하는 모습을 보자. 문제풀이 선수를 만들어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제풀이는 개념을 충분히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고, 주어진 개념을 요리조리 반추해보는 과정이다. 우리 학생과 엄마는 문제풀이에 대해 첫째, 숙달과정이어야 하기에 정해진 시간에 모두 풀어야 되고 둘째, 해당 개념에 대해 응용될 수 있는 모든 개연성이 있는 문제는 다 풀어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시험에서 하나도 틀리지 않아야 되고, 그래야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다고 안심한다.

이런 상황은 학교 시험지를 보아도 확연하다. 개념을 스스로 생각해서 답하도록 이끌어 주는 교사의 노력을 시험지에서 찾기 힘들다. 아이들이 많은 문제를 풀어 봤음을 알고 있기에 교사가 내는 시험문제는 요리조리 까다롭게 말만 바꾸어 함정을 만들어 놓은 식이다.

대학논술도 마찬가지다. 지난 입시철, TV에서 서울시내 주요 대학 입학담당 보직교수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한 것은 천편일률적인 문투의 논술은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논술은 사물과 세상에 대한 사고체계와 논리를 확인하자는 것이다. 우리 고교생에게서 지식은 있으되 그것이 숙성되기를 바라는 것을 포기해야 할 판이다. 논술도, 생각하는 방법도 규격화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우리 청소년의 수학 점수가 세계 최고였다. 문제 푸는 기술이 좋아서 최고 점수를 받은 것이고, 정작 수학적 탐구능력 평가에서는 꼴찌였다고 국제적 비웃음을 받은 것이 불과 2년 전이다. ‘비싼 사교육’일수록 문제를 잘 풀게 하고 논술을 잘 보게 해 주는 요술기계처럼 생각해 엄청난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걸 보면 학생이 제 힘으로 제 생각을 정리하여 갈 날은 아예 실종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김태경 경인여대 교수·환경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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