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씨 법정구속]“국민동의 없이 대북송금 주도” 엄벌

  • 입력 2006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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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들어서는 박지원 前장관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현대 비자금 150억 원 수수 등의 사건에 대한 선고공판에 참석하려고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법원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의 혐의를 인정해 징역 3년에 추징금 1억 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김재명  기자
법정 들어서는 박지원 前장관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현대 비자금 150억 원 수수 등의 사건에 대한 선고공판에 참석하려고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법원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의 혐의를 인정해 징역 3년에 추징금 1억 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김재명 기자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현대 비자금 150억 원 수수 혐의는 어떻게 무죄가 됐을까.

대법원이 2004년 11월 12일 선고에서 대북 송금 사건의 핵심 쟁점인 박 전 장관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판결했을 때 법원 안팎에서 논란이 거셌다.

이번 재판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증거가 없다며 박 전 장관의 손을 들어 줬다.

하지만 국민적 동의 없이 대북 송금을 추진해 국론 분열을 초래한 점,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자리에서 두 차례에 걸쳐 대기업 회장에게서 돈을 받은 점을 강조한 뒤 박 전 장관을 법정 구속해 엄벌 의지를 나타냈다.

▽대법원과 같은 판단=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박 전 장관에게 양도성예금증서(CD) 150억 원을 전달하는 과정에 대한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진술을 “신빙성이 있다”고 받아들였다. 또 박 전 장관에게서 “뇌물을 요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김영완(해외 체류) 씨의 진술서에 무게를 둬 유죄로 인정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2부의 판단은 이 두 가지 모두 증거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대법원 판단을 따랐다.

이재환 부장판사는 20여 분간 선고하면서 무죄 이유를 오래 설명했다.

검찰이 15차례의 파기환송심 재판 내내 공을 들였던 김 씨의 영사신문 진술서에 대해 “진술의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특별히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어 증거능력을 부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의 진술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고 한다.

▽뇌물수수 증거가 없다=법원의 형사사건 판단은 검찰의 기소 사실이 타당한 증거에 의해 입증되느냐를 기준으로 삼는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실제 범행이 이뤄졌는지와는 다른 차원의 논리 및 증명이 필요하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김 씨의 진술서에 증거능력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박 전 장관이 돈을 받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처음부터 불가능해진 셈이다.

박 전 장관 측 소동기 변호사는 “법원이 무죄를 선고할 때는 ‘피고인이 돈을 받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증거에 따라서만 판단한다”고 말했다.

▽150억 원의 행방은?=박 전 장관의 뇌물수수 혐의가 무죄가 돼 현대 비자금 150억 원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밝히기가 어려워졌다.

이 돈은 2000년 4월 초 9개 금융기관의 현대건설 계좌에서 현금으로 인출돼 농협에서 CD로 만들어진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확인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돈을 받은 혐의로 박 전 장관을 기소한 검찰 측 증거를 모두 신빙성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박 전 장관의 뇌물수수 혐의가 무죄가 되면 김 씨가 자신에게 피해가 올 것을 우려해 일부러 박 전 장관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가 엄격한 법적 잣대로 검찰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아 이 판결이 확정되면 150억 원의 행방을 확인할 수 있는 실마리가 사라진다.

김 씨가 왜 박 전 장관에게서 ‘150억 원 뇌물 요구’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지, 이 전 회장은 왜 CD를 박 전 장관에게 직접 전달했다고 주장하는지 의문으로 남는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 박지원씨 법정구속 순간 “보석취소”에 4, 5초간 멍한 표정

“실형이 선고됐기 때문에 피고인의 보석을 취소합니다.”

서울고법 형사2부 이재환 부장판사가 25일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을 법정 구속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박 전 장관은 4, 5초간 멍하니 피고인석에 서 있었다.

박 전 장관은 법정 경위가 자신을 구속 피고인 대기실로 안내하기 위해 다가오자 겨우 정신을 차린 듯 법정 경위를 따라가며 방청석을 가득 메운 지인들에게 천천히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김옥두 전 민주당 의원, 조순용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김대중 전 대통령 측 관계자, 박 전 장관과 수감생활을 같이한 적이 있는 김기섭 전 국가안전기획부 기조실장 등이 이 재판을 지켜봤다. 이들은 박 전 장관이 법정을 나간 뒤 웅성거렸다.

이 부장판사는 이날 20여 분에 걸친 선고시간 내내 뇌물수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설명했기 때문에 아무도 법정 구속을 예상하지 못했다. 대부분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으면 당연히 집행유예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검찰이 열심히 노력했지만 근본적인 증거능력의 신빙성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이 부장판사의 말에 방청석에선 낮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는 이어 5분여간 유죄 내용을 설명했다. 방청석의 분위기는 정반대가 됐다.

박 전 장관은 2003년 6월 18일 처음 구속 수감된 뒤 건강 악화로 4차례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았다. 지난해 3월에는 보석 결정을 받아 풀려났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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