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대추분교 철거]“떠나고 싶어 떠나나” “죽어도 못간다”

  • 입력 2006년 5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정든 고향이지만 국책사업인 만큼 눈물을 머금고 대추리를 떠났다는 방효증 씨. 평택=장원재 기자
정든 고향이지만 국책사업인 만큼 눈물을 머금고 대추리를 떠났다는 방효증 씨. 평택=장원재 기자
▼미련 남지만…▼

“정든 고향을 떠나는데 어느 누가 미련이 남지 않겠나. 하지만 국책사업인데 떠나야지 별 수 있어?”

1월 정부와 토지보상에 합의하고 3대째 살아온 대추리를 떠난 방효증(61) 씨.

집과 밭을 포함한 800여 평을 3억여 원에 보상받은 그는 4일 오전 대추분교 앞에서 경찰의 강제철거 과정을 지켜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대추리에서 가까운 송화리의 33평형 아파트를 전세 내 살고 있는 그는 그동안 부인(59)과 함께 하루도 빠짐없이 고향 집을 찾았다.

이사할 때 미련이 남아 살던 집에 남겨두고 온 가축에게 사료를 주고, 친하게 지냈던 이웃의 안부를 듣고 싶었기 때문.

그러나 그는 보상을 거부한 채 강제철거를 앞두고 있는 옛 이웃에게서 “미군기지 이전에 찬성한 배신자가 왜 왔느냐”는 비아냥거림과 함께 심한 욕설을 들어야 했다. 어느새 주민들도 둘로 갈라져 있었던 것.

방 씨는 대추리에 남은 주민들이 보상을 거부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어느 날 갑자기 마을을 찾아온 젊은 운동권 친구들의 영향이 클 것”이라며 “보상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나는 정부가 반드시 추진해야 할 사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났다”고 밝혔다.

이날 경찰에 맞서 대학생들이 대나무봉을 휘두르며 ‘미군 철수’를 외치자 그는 “남북이 분단된 현실을 감안할 때 주한미군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대추분교에 대한 행정대집행(강제철거)이 마무리되기 전에 가축을 처분하고 가슴 아픈 기억을 모두 잊기로 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부인이 “더 흉한 꼴 보기 전에 집에 가자”며 방 씨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사할 때 텃밭에 옥수수씨를 심어 놨는데 올여름에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텃밭이 그때까지 남아 있으면 자식들과 나눠 먹고, 아니면 할 수 없지요, 뭐.”

평택=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고향 지켜야…▼

두 눈을 뜨고는 도저히 자식 같은 논을 떠날 수 없다는 대추리의 방효태 할아버지. 평택=장원재 기자
“난 안 나갈 거여. 죽어도 여기서 죽을 거여.”

방효태(方孝台·70) 할아버지는 4일 오전 10시 경기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대추분교 운동장 한 구석에서 전경들이 학교에 진입하는 모습을 보며 주저앉아 가슴을 쳤다.

방 할아버지는 대추리에서 태어나 자란 3대 토박이로 101세인 노모를 모시고 있다. 그는 3일 대추분교에서 밤을 새웠다. 학생, 노동자들과 함께 대추분교 정문 앞에 앉아 시위를 했다. 모르는 노래도 따라 부르고 박수도 쳤다.

방 할아버지는 전경들에 의해 아스팔트 도로에 내던져졌다. 그는 억울한 심정에 눈물이 났다.

“내 땅에서 내가 사는 게 죄여? 공탁금, 난 손도 안 댔어! 자식 같은 논을 갈아엎는 꼴을 내가 어떻게 보나?”

그는 보상금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평택 땅은 평당 50만, 100만 원인데 15만 원을 주면서 나가라고 하니 이게 강도가 아니면 뭐란 말여?”

방 할아버지는 돈보다 더 큰 문제는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살날이 남았으면 얼마나 남았겠어? 이 나이에 타지에 가면 할 일이 있기나 해?”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났다. 방 할아버지는 담배를 꺼내 물면서 “나간 사람들도 정부가 대추리를 사람 못 살 곳으로 만들어 놔 나갔으니 알고 보면 피해자”라고 덧붙였다.

결혼한 4남매에게서 어제 전화가 왔다. 자식들은 위험하니 대추리를 떠나라고 성화지만 방 할아버지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

“나라가 필요하다면 땅은 줄 수 있어. 하지만 곤봉하고 방패를 들고 와서 하는 말이 내 땅에 양코배기들 기지를 짓겠다는 거 아냐? 그건 안 되지.”

방 할아버지는 “집에서 출입도 못 하고 계실 어머님이 걱정이지만 여기서 (우리의 뜻이)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못을 박듯 말했다.

평택=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