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범이라서… 가난때문에… 법창에 비친 가족상봉 - 이별

  • 입력 2006년 1월 23일 03시 03분


코멘트
▼누범이라서…▼

어머니가 가출한 뒤 방황하던 한 20대 절도 피의자가 검찰 수사관의 도움으로 15년 만에 그리던 어머니를 만나게 됐다.

지난해 3월 서울북부지검에서 사법연수원 실무 수습을 받던 장정태 시보는 절도 혐의로 구속된 최모(27) 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15년 전 헤어진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출한 어머니의 빈자리는 컸다. 학창시절 가출을 일삼던 최 씨는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절도로 여러 차례 체포돼 전과자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장 시보는 남의 저금통을 훔친 경미한 사건을 저질렀지만 누범이란 이유로 구속된 최 씨의 사연이 안타까워 같이 근무하던 형사2부 주철중 수사관에게 “도와 줄 길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주 수사관은 1주일간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15년 동안 연락이 끊겼던 최 씨 어머니의 주소를 알아낼 수 있었다.

최 씨의 어머니는 재혼해 새 가정을 꾸린 뒤였다. 하지만 최 씨의 어머니는 주 수사관에게서 15년 만에 아들 소식을 듣고 단걸음에 최 씨가 수감된 성동구치소로 향했다. 구치소 유리창을 맞대고 선 두 모자는 말없이 울기만 했다.

최 씨의 어머니는 아들을 만난 뒤 주 수사관을 찾아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재혼한 남편도 아들이 생겨 좋으니 같이 살자고 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15년 만의 모자(母子) 재상봉은 잠시 미뤄져야 했다.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던 최 씨가 항소심에서 누범이라는 이유로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주 수사관은 “최 씨가 실형을 선고받은 점은 안타깝지만 출옥 후 새 가정에서 새 삶을 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가난 때문에…▼

검찰의 도움으로 헤어진 지 20년 된 여동생을 만나게 된 피의자 김모(42) 씨. 그러나 김 씨는 여동생과 다시 헤어졌다. 가난 때문이었다.

청주지검 형사1부 조경헌(曺炅軒) 검사는 청주의 한 절에서 불전함(시줏돈 넣는 통)의 현금을 훔치다 스님에게 들키자 주먹을 휘두른 혐의(준강도)로 6일 구속된 김 씨를 조사하면서 딱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김 씨는 검거될 당시 손과 몸을 심하게 떨었다. 그는 오래전 공사장 인부로 일하다 크게 다쳐 심한 중풍에 시달리고 있었다. 김 씨는 손 떨림 탓에 불전함 속의 동전조차 제대로 움켜쥐지 못해 딸그락거리는 소리를 내 붙잡혔다.

김 씨는 검찰에서 조사를 받다가 조 검사에게 동생 이야기를 꺼냈다.

김 씨의 부모는 1982년 사망했다. 몇 년 뒤 김 씨 4남매는 일거리를 찾아 헤매다 서로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김 씨는 조 검사에게 동생들을 꼭 한번만 만나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조 검사는 호적등본과 주민등록을 조회했으나 김 씨 남매 중 2명은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였다.

조 검사는 주민등록이 확인된 다른 형제들을 찾아 통신회사에 협조를 요청한 끝에 김 씨의 여동생(39)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조 검사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오빠’의 처지를 설명했다.

12일 김 씨 남매는 헤어진 지 20년 만에 청주교도소에서 만났다. 마침 김 씨가 돈을 훔치려던 절의 주지스님이 김 씨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전했다. 김 씨도 석방될 수 있게 됐고, 두 남매는 이제 헤어지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이들은 다시 ‘이별’을 택했다. 김 씨가 석방된다 해도 생계가 막막했기 때문이다. 김 씨 여동생도 김 씨를 책임질 형편이 못 됐다.

조 검사는 부장검사 등과 상의한 끝에 김 씨에게는 교도소가 ‘차라리’ 안전하다고 판단해 12일 김 씨를 구속 기소했다.

조 검사는 “추운 겨울 만이라도 끼니가 제공되는 교도소에서 지내게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