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취재]방폐장 유치 두달… 경주가 깨어난다

  • 입력 2005년 12월 2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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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경북 경주시에는 건설회사 사무실이 잇따라 문을 열고 있다. 3일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유치가 확정 발표된 이후에만 종합건설회사 12개, 전문건설업체 5개 등 모두 17개 회사가 경주에 사무실을 차렸다.

식당도 하루 1개씩 새로 생긴다. 지난달 2일까지 4372개이던 식당이 50일이 지난 22일 현재 4422개로 늘었다.

방폐장 유치 이후 달라진 경주의 모습이다.

21일 본보 기동취재팀이 찾은 경주는 영하의 날씨인데도 활기가 넘쳤다. 시민들은 방폐장을 유치한 뒤 지역경기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19년간 표류하던 국책사업을 해결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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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 찾은 천년 고도(古都)=경주 시민은 90% 가까운 찬성으로 방폐장을 유치했다. 무엇이 30만 시민을 하나로 뭉치도록 만들었을까.

경주를 찾는 관광객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1993∼98년 연평균 8.9%씩 늘던 관광객이 1999년 이후에는 해마다 4.4%가량씩 감소했다.

여기에다 경마장과 태권도공원 같은 대형 국책사업 유치에 잇따라 실패하자 시민의 상실감이 적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시민의 힘으로 이룬 방폐장 유치는 ‘3000억 원+α’ 이상의 심리적 효과를 안겨줬다. 지역발전을 위한 자신감을 회복하고 찬란했던 고도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기폭제가 된 것.

첨성대가 있는 인왕동 월성역사유적지구 앞에서 식당을 하는 이경선(李京善·43·여) 씨는 “관광산업의 침체로 활기를 잃어 가는 경주가 되살아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방폐장이 들어설 양북면 봉길1리 곽석윤(郭奭潤·58) 이장은 “정부의 약속대로 세계적인 관광시범마을을 조성해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적극 나선다면 경주가 동남해안 경제권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본사 예정지로 소문이 난 양북면 어일리에는 부동산중개업소가 20곳 이상 새로 들어섰다.

▽천년 유적과 과학도시의 꿈=경주는 한국의 대표적 역사문화도시라는 바탕에 에너지산업도시로 발돋움하겠다는 청사진을 마련했다.

방폐장과 한수원 본사 유치에다 양성자가속기 건립에 따른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활용해 역사문화와 과학기술이 어우러진 새로운 경주를 만든다는 내용이다.

백상승(白相承) 경주시장은 “이미 가동 중인 원전과 2012년까지 추가될 신월성원전 2기에 한수원과 양성자가속기로 발생하는 집적 효과는 경주 전체를 업그레이드하는 놀라운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정부가 약속한 직접 지원금 3000억 원은 예정지 주변 주민을 비롯해 농어민을 위해 우선적으로 사용하되 시민의 복지향상에도 활용할 방침이다.

경북도는 동해안을 한국 최대의 에너지 클러스터로 구축해 내륙인 구미와 대구까지 연결하는 성장동력으로 만들기로 했다. 현재 국내에 가동 중인 원전 20기 가운데 절반이 경북(경주 월성 4기, 울진 6기)에 있다.

도는 한수원 본사와 양성자가속기를 인근 포항시의 포스텍(포항공대) 및 포항 가속기연구소, 영덕 풍력단지 및 울진 원전단지를 묶어 신(新)에너지산업벨트로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국내외 과학기술자의 주거 및 휴양단지인 ‘사이언스 빌리지’를 조성하고 원자력과 해양에너지, 풍력 등 첨단기술을 융합한 ‘첨단퓨전기술연구소’를 설립하기로 했다.

▽관광 기반 획기적으로 개선해야=그러나 방폐장 유치가 경주-경북-동해안 발전으로 이어지려면 고도 경주의 관광 기반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경주 신라문화원 진병길(陳炳吉·42) 원장은 “경주의 문화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보다 문화재보호법 때문에 골칫덩어리로 여기는 시민이 적지 않다”며 “역사문화도시로서의 경주가 살아야 과학기술지역이라는 이미지가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관광부는 7월 경주의 관광 기반을 개선하기 위해 국책사업인 ‘경주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을 확정했다. 올해부터 2034년까지 30년 동안 3조2800억 원을 투입해 옛 서라벌을 거의 완벽한 형태로 재현한다는 게 핵심이다.

1단계로 2009년까지 1000억 원을 들여 신라의 국찰 황룡사를 복원하고 노동동 옛 경주시청 터에 세계역사문화전시관을 건립하기로 했다. 문화재와 뒤섞인 시가지를 말끔히 단장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사업에 투입할 재원 가운데 지방비 비율이 42.3%를 차지해 재정자립도가 30% 정도인 경주시가 부담하기는 힘들다는 점을 들어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경주대 관광개발학과 김규호(金奎浩·관광진흥원장) 교수는 “방폐장 유치에 따른 정부의 지원을 역사문화도시 조성 등 관광 기반 조성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울산 경북 강원의 3개 시도지사는 최근 서울에서 만나 역사와 문화, 관광자원을 활용한 관광자원 벨트화 구축과 공동방재시스템 확립을 위한 정책적 지원을 정부에 요청했다. 또 ‘동해안개발기획단’을 총리실에 설치하도록 건의했다.

▼2008년 착공…2009년 1월 가동▼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2일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일대 63만4769평을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건설 예정지로 지정·고시하도록 산업자원부에 신청했다.

여기에는 신월성 3·4호기 원전이 들어설 예정이었던 39만5546평이 포함됐다.

한수원은 방폐장을 ‘동굴형’으로 할지, 아니면 ‘천층형’으로 할지를 결정하기 위해 이달 초부터 시추 조사를 벌이고 있다.

동굴형은 말 그대로 동굴을 파서 폐기물을 넣는 방식이고, 천층형은 평지에 지은 콘크리트 구조물에 폐기물을 넣고 시멘트로 밀봉하는 방식. 동굴형은 암반이 단단할 경우, 천층형은 땅이 평평할 경우에 짓는 게 일반적이다.

방폐장 건설 부지가 고시되면 한수원은 내년 2월부터 환경영향평가와 부지 안정성 분석을 시작한다. 이어 2007년 5월에는 사업 실시계획을, 7월에는 건설 및 운영허가를 정부에 신청할 예정이다.

공사 착공은 2008년 1월로 예정돼 있고 방폐장은 2009년 1월부터 가동한다.

한수원은 최근 방폐장 가동 이후 고리 월성 울진 영광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생기는 폐기물을 방폐장으로 실어 나를 3000t 급 폐기물 운반선의 기본설계를 시작했다.

한수원 신흥식(申興湜) 방폐장건설준비반장은 “주민과 긴밀히 협의해 방폐장 건설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기동취재팀▼

김동철 정치전문기자(팀장)

이권효 이종석 기자(사회부)

장강명 기자(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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