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땐 刑감경’ 추진]수사 빨라지지만 ‘法감정’ 어긋나

  • 입력 2005년 1월 16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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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도입을 검토 중인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유죄협상제도)과 면책조건부 증언취득제도(Immunity)는 검찰의 수사관행에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제도 도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아 앞으로 추진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검토 배경=법원이 법정에서 나온 진술과 증거를 토대로 사건을 심리하는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고 있는데다, 검찰조서도 법정에서 피고인이 부인하면 그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례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실제로 증거 확보가 어려운 뇌물사건 등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밤샘조사의 원칙적 금지, 변호인의 수사과정 참여기회 확대 등 수사관행이 대폭 바뀌면서 피의자에게서 자백을 이끌어내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따라서 뇌물 등 당사자 진술 외에 뚜렷한 물적 증거를 찾기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해석된다.

송광수(宋光洙) 검찰총장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첨단 수사기법의 개발 등을 통해 변화된 수사환경에 대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한편 플리바게닝 등의 도입 검토를 언급하기도 했다.

▽도입되면 어떻게 되나=검찰은 마약이나 뇌물수수 등 물증 확보가 어려운 사건에 플리바게닝 제도를 적용할 계획이다. 이 경우 형사사건을 자백사건과 부인사건으로 구분해 처리하겠다는 것.

플리바게닝을 통해 자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건은 가능한 한 신속하게 처리하겠다는 게 검찰의 구상. 이 경우 자백이 나오지 않는 부인사건 수사에 보다 충분한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 물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검찰은 기대하고 있다.

면책조건부 증언취득제도가 도입되면 검사는 의혹만 있는 뇌물수수나 마약거래, 폭력조직 사건 등을 수사할 때 수사대상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증언 및 증거를 쉽게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검찰은 이들 제도가 도입되면 검찰의 독단적, 편의적 수사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피의자나 증인의 진술 취득과정에서 법관의 확인 등 정형화된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감시 및 견제장치를 갖춘다는 방침이다.

▽전망=영미법 체계의 국가에서 시작된 플리바게닝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대륙법계 국가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검찰 내부에선 제도 도입을 낙관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7월 각계 전문가가 참여해 출범한 대검찰청 산하 ‘인권존중을 위한 수사제도·관행 개선위원회’에서 자백을 강요하는 수사관행을 고치기 위한 대안으로 이 제도 도입이 권고됐던 점도 낙관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김주덕(金周德) 변호사는 “철저한 증거 수집을 통해 범죄를 입증하고 상응한 처벌을 해야 할 검찰이 범죄자와 협상해 형을 깎아주는 것은 국민의 법 감정이나 정의 관념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부정부패 척결이란 검찰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난다”고 비판했다.

또 검찰 수사 단계에서 이미 범죄인의 형량이 정해지는 구조는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도록 한 우리나라 형사사법 체계와는 일정 부분 괴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플리바게닝의 주요국 사례
국가주요 내용도입 시기
미국-검사와 피고인 및 변호인이 협상의 조건에 대해 협의
-혐의를 인정하면 △보다 가벼운 범죄로 기소 △보다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을 수 있도록 약속 △다른 혐의에 대해 불기소 또는 공소 취소를 약속하는 등의 세 가지 방식으로 운영
-법원은 당사자간 협상을 받아들이거나 협상 결과를 존중
-19세기 초 일부 주에서 관행으로 발전
-19세기 말 미국 전역에서 형사소송 절차의 한 특징 으로 자리 잡음
-1970년 연방대법원, 그 존재와 적법성을 인정
프랑스-법정형 5년 이하의 범죄에 대해 협상이 가능
-검사는 피고인이 혐의를 인정하거나 다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최대 징역 1년까지 감형 협상을 제안할 권 한이 있음
-검사가 협상을 제안할 때에는 반드시 변호인이 동석 해야 함
-피고인이 협상을 수용할 경우 판사 앞에서 확인절차 를 거치고 판사는 협상의 승인 여부를 결정함
-2004년 10월 1일부터 시행
이탈리아-검사와 피고인이 협상을 통해 합의한 형량을 법관에게 공동으로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화-1981년 도입
스페인-법정형 6년 이하의 범죄에 대해 협상이 가능 -1989년 도입
독일-당사자간 협상이 허용되며, 법원이 협상 결과에 구속 되지는 않지만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판례에 판시-입법화되지는 않았음
자료:대검찰청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유죄협상제도(Plea Bargaining):

피의자가 자백할 경우 형을 감경해 주는 제도. 피의자가 혐의를 시인하면 검찰은 가벼운 범죄로 기소하거나 형량을 낮춰 준다.

:면책조건부 증언취득제도(Immunity):

피의자의 성격이 강한 참고인이 제3자의 범행을 증언할 경우 일정한 범위 내에서 이 참고인의 죄를 면해 주거나 감경해 주는 제도이다.

▼자백때 변호인 입회-피의자 친필확인서 첨부▼

‘검사가 작성한 신문조서도 진술자가 법정에서 부인하면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검찰의 수사와 조사에도 변화가 생겼다.

16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검찰은 피의자가 검찰에서 조서를 작성한 뒤 ‘조사과정 확인서’를 친필로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이 확인서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조사받았는지, 조서 기재내용이 본인이 진술한 것과 같은지, 조서내용 수정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는지 등의 질문에 대해 피고인이 직접 답변서를 작성하는 형태로 조서 뒤에 붙여진다.

검찰은 또 조사 과정에 변호인이 입회하는 것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가능하면 이 과정을 녹음하고 녹화한다.

서울중앙지검 이준보(李俊甫) 3차장은 “피의자가 자백하는 경우 변호인을 입회시키는데 이는 예전에는 없던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법원의 판례 변경 후 ‘검찰에서 그런 진술을 한 적이 없다’는 식의 말 바꾸기가 법정에서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아직까지 이런 상황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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