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 법원문서 배달 소홀, 국가 배상 책임"

  • 입력 2005년 1월 3일 16시 53분


코멘트
토지사기단의 농간으로 법원 소송 관련 우편물을 엉뚱한 곳으로 배달한 집배원 때문에 5억원을 날린 사람에게 국가가 대신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15부(부장판사 이진성·李鎭盛)는 김모 씨(41)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지난해 12월 24일 "국가는 80%의 책임을 지고 3억4000여만 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3일 밝혔다. 김 씨는 "집배원이 본인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송달 서류를 제3자에게 배달하는 바람에 사기를 당했다"며 소송을 냈다.

토지사기단 3명은 2001년 재미교포 최모 씨 소유의 경기도 고양시 소재 임야 5500여 평에 대해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최 씨가 국내에 없다는 점을 악용해 땅을 '통째로' 가로채려 한 것. 소송 서류에 최 씨 주소도 최 씨와 무관한 주소를 기재했다. 법원에서 보내는 각종 서류를 빼돌리기 위한 계략이었다.

이들은 바꿔치기한 주소지에 살고 있는 집주인에게 최 씨에게 오는 법원 서류를 대신 받아달라고 미리 부탁해 놓았다. 집배원 이모 씨는 "대신 전해주겠다"는 집주인의 말을 믿고 각종 우편물을 건네준 뒤 송달통지서는 최 씨에게 직접 건넨 것처럼 작성했다. 우편물을 전혀 받아볼 수 없었던 땅 주인 최 씨가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 소송은 사기단의 승소로 끝났다.

김 씨가 이들에게 걸려든 것은 2002년 4월. 김 씨는 사기단의 '승소 판결'만 믿고 문제의 땅을 10억여 원에 사기로 했다. 계약금 1억원을 지급하고 한 달 뒤 중도금 4억원까지 지급했다.

그러나 땅 주인 최 씨는 국내 재산관리인에게서 뒤늦게 이 같은 상황을 전해 듣고 항소해 땅을 되찾았다. 토지사기단 일당 3명과 우편물을 대신 받아준 집주인, 집배원 이 씨 등은 모두 형사 처벌을 받았다. 땅을 사기로 했던 김 씨만 수억 원을 날릴 뻔한 것.

재판부는 공무원이 집배원의 잘못으로 피해를 입은 만큼 국가가 대신 배상하도록 했다. 그러나 "40년 전 매매 거래를 원인으로 소송을 청구하고 승소 판결만 받은 뒤 전매하려던 상황에 대해 매수인도 신중히 판단해야 했다"며 김 씨에게도 20%의 책임을 물었다.

조용우기자 woogij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