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민사15부(부장판사 이진성·李鎭盛)는 김모 씨(41)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지난해 12월 24일 "국가는 80%의 책임을 지고 3억4000여만 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3일 밝혔다. 김 씨는 "집배원이 본인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송달 서류를 제3자에게 배달하는 바람에 사기를 당했다"며 소송을 냈다.
토지사기단 3명은 2001년 재미교포 최모 씨 소유의 경기도 고양시 소재 임야 5500여 평에 대해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최 씨가 국내에 없다는 점을 악용해 땅을 '통째로' 가로채려 한 것. 소송 서류에 최 씨 주소도 최 씨와 무관한 주소를 기재했다. 법원에서 보내는 각종 서류를 빼돌리기 위한 계략이었다.
이들은 바꿔치기한 주소지에 살고 있는 집주인에게 최 씨에게 오는 법원 서류를 대신 받아달라고 미리 부탁해 놓았다. 집배원 이모 씨는 "대신 전해주겠다"는 집주인의 말을 믿고 각종 우편물을 건네준 뒤 송달통지서는 최 씨에게 직접 건넨 것처럼 작성했다. 우편물을 전혀 받아볼 수 없었던 땅 주인 최 씨가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 소송은 사기단의 승소로 끝났다.
김 씨가 이들에게 걸려든 것은 2002년 4월. 김 씨는 사기단의 '승소 판결'만 믿고 문제의 땅을 10억여 원에 사기로 했다. 계약금 1억원을 지급하고 한 달 뒤 중도금 4억원까지 지급했다.
그러나 땅 주인 최 씨는 국내 재산관리인에게서 뒤늦게 이 같은 상황을 전해 듣고 항소해 땅을 되찾았다. 토지사기단 일당 3명과 우편물을 대신 받아준 집주인, 집배원 이 씨 등은 모두 형사 처벌을 받았다. 땅을 사기로 했던 김 씨만 수억 원을 날릴 뻔한 것.
재판부는 공무원이 집배원의 잘못으로 피해를 입은 만큼 국가가 대신 배상하도록 했다. 그러나 "40년 전 매매 거래를 원인으로 소송을 청구하고 승소 판결만 받은 뒤 전매하려던 상황에 대해 매수인도 신중히 판단해야 했다"며 김 씨에게도 20%의 책임을 물었다.
조용우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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