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업 그곳에도 길이 있다]<5>사기꾼을 조심하라

  • 입력 2004년 12월 8일 17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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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간 해외 취업 준비를 거쳐 작년 미국 땅을 밟은 최모 씨(25·여)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당황스러운 소식을 접했다.

국내 해외 취업 알선 업체 T사의 말과는 달리 근무지가 확정돼 있지 않았던 것. “약속돼 있던 회사에서 일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자 현지에서는 “취소됐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미국의 인력업체 담당자는 대신 패스트푸드점 리스트 중에서 한 곳을 정하라는 엉뚱한 요구를 했다. “이런 일이라도 배정받지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절박해진 최 씨는 T사로 전화를 걸었지만 회사 측에서는 “해외로 떠난 이상 도와주기 어려우니 그곳에서 시키는 대로 해라”며 발뺌했다.


최 씨는 직접 이곳저곳에 취업 인터뷰를 했지만 결국 한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 일을 하다 몇 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해외 취업이나 인턴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구직자들의 준비, 적응 과정에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외국 기업들과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제대로 갖추고 이들을 지원해 줄 알선 업체가 많지 않다. 구직자가 현지 근무처 등을 사전에 직접 확인해 보기 어렵다는 점도 한 가지 원인이다.

▽해외취업의 ‘지뢰’들 피해 가려면=항공사 승무원이나 간호사 등 해외 취업 시스템이 어느 정도 정착된 분야는 걱정이 덜한 편.


문제는 외국인의 취업 관련 규제가 까다롭거나 한국인들의 진출이 아직 많지 않은 나라 및 업종에서 종종 발생한다. 더구나 해외 취업은 구직자→한국 인력업체→해외 인력업체→해외 기업 등 여러 단계를 거쳐 이뤄지기 때문에 빈틈이 생길 가능성이 상존한다.

산업인력공단의 해외취업지원부 등 국가기관이나 공인된 대형 업체가 아닌 소규모 취업 알선 업체들의 부실한 준비 과정도 걸림돌이다.

이들 회사 상당수는 이민, 이주를 알선하면서 곁가지로 현지 일자리를 알아봐 주는 업체들. 취업 분야가 정보기술(IT), 호텔경영, 외식, 패션 등으로 확대되면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신생 알선 업체도 많다.

작년 400만원을 들여 미국으로 해외 취업을 시도한 박모 씨(31)도 현지에서 회사와 맡은 업무가 모두 바뀌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국내 취업 알선 업체는 아예 연락도 되지 않았다. 그 사이 부도가 나서 회사 문을 닫아 버렸기 때문.

박 씨는 “현지 근무여건 등에 대해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식으로 사람을 보내 놓고는 책임지지 않는 알선업체들 때문에 피해를 보는 구직자가 상당수”라고 말했다.

일부 업체는 서류신청 및 비자수속비 등 각종 명목으로 돈을 받은 뒤 취업에 실패했는데도 환불을 거부해 구직자들의 항의를 받았다.

취업정보 제공업체 파인드올은 “사고 시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없는 불법 취업을 알선해 주는 업체도 있으므로 업체의 신뢰도와 예상 근무업체 정보 등을 꼼꼼히 챙겨 봐야 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비자 문제 등도 철저한 사전 준비=해외 취업 시 가장 많이 걸리는 또 한 가지 문제는 비자.

전문가들은 해외 기업에 근무하려면 정식으로 취업비자를 발급받으라고 권한다. 관광비자로 취업을 하면 그 자체가 불법이므로 문제가 생겨도 구제받기가 어렵다.

다만 미국 등 일부 국가의 경우 비자 발급 규정이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단점이다.

미국에서는 회사가 해외 인력을 정식 채용하려면 그 필요성을 입증해야 하고 이를 정부에서 승인받는 등 절차가 복잡하다. 구직자도 필요한 모든 서류를 구비하고 법조인을 보증인으로 세우는 장기간의 준비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를 통해 정식 취업비자(H비자)를 받는 데는 1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일부 업체는 짧은 시일 안에 발급되는 관광비자로 일단 취업을 하고 보라는 식으로 불법 취업을 권유하기도 한다.

글로벌펠 코리아 송준석 대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식으로 비자를 받는 것이 최선”이라며 “최대 18개월 체류가 가능한 인턴십 비자(J비자)나 학생비자(F비자) 등으로 우회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 밖에 구직자가 취업에 앞서 자질과 적성을 제대로 따져보는 것은 필수. 대화가 안 된다는 이유로 냉대받거나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현지 취업자들의 설명이다.

일본 퀘스트에 근무하는 김충식씨는 “기술력이 좋아도 어학 실력이 부족하다면 단순 작업만을 하는 저급 프로그래머로밖에 인정받지 못한다”며 외국어 실력을 강조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취업알선 사기 피하려면…선금 달라는 업체 의심해 봐야▼

선진국에서 경험을 쌓고 선진 기술을 접하려는 목적으로 해외 취업의 결심을 굳히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이와 동시에 해외취업 희망자를 대상으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업체도 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일부 업체는 해외 구인정보 제공 또는 해외 구인업체 관계자 소개 등을 제목으로 내걸고 해외 취업 희망자에게 접근해 선금을 요구한다. 최근 선금만 받고 도망가는 업체에 피해를 본 사례가 늘고 있어 가능하면 선금을 요구하지 않는 업체를 고르는 게 좋다.

또 해외 취업 희망자들 중 “일단 관광비자로 입국한 뒤 현지에서 취업비자를 신청하면 더 쉽게 취업할 수 있다”는 식의 속임수에 속은 피해 사례도 늘고 있다.

취업비자 없이 관광비자 등으로 취업할 경우 취업 자체가 불법이므로 구제 방법이 없다. 따라서 취업비자는 반드시 미리 발급받고 출국해야 한다.

자기 능력 이상의 임금이나 혜택을 준다는 말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자국어에 서툰 외국인에게 고임금의 훌륭한 일자리를 선뜻 보장해 줄 외국 기업은 없다.

이런 식의 취업 알선 사기를 피하려면 공신력 있는 취업 알선 업체를 골라야 한다. 한국산업인력공단 해외취업지원부에서는 해외 취업 희망자와 믿을 만한 알선 업체를 연결해 주기도 한다.

해외 취업 알선 업체가 노동부에 등록된 업체인지 확인하고 이용해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어렵게 해외 취업이 확정되었다고 해도 취업비자를 발급받아 정식으로 출국할 때까지는 많은 변수가 있다.

따라서 취업비자를 발급받고 출국일이 결정되는 순간까지는 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거나 한국을 곧 벗어날 것처럼 행동하는 경솔한 처신은 금물이다.

권영선 한국산업인력공단 해외취업지원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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