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부정때문에…인터넷 지역감정 싸움 격화

  • 입력 2004년 12월 4일 11시 46분


코멘트
망국적인 지역감정. 우리 사회와 정치권이 해결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던 과제다. 지난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는 어느정도 성과도 거뒀다.

그런데 한 동안 잠잠했던 지역감정의 ‘악령’이 엉뚱한 곳에서 되살아날 조짐을 보여 많은 이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그곳은 다름아닌 인터넷. 익명성이라는 철옹성에 몸을 숨긴 추악한 몇몇 네티즌이 싸움을 주도하고 있다.

발단은 핸드폰을 이용한 수능부정.

처음 광주에서만 대거 적발됐다는 게 문제였다.

“광주에서 일 날 줄 알았다.

“뭉치는 거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악성 네티즌’들은 ‘김대중’, ‘전라도 피해의식’등 해묵은 단어들까지 끄집어내 광주와 전라도 때리기에 신명을 냈다.

심지어 “(5·18때) 군인들 총 빼앗아 무고한 군인들 죽인 광주 조상들은 반성하라.(ykj1224)는 근거 없는 글까지 거리낌 없이 게시판에 올랐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번 수능부정이 광주만의 일이겠는가. 정말 다른 지역에서는 없었을까”(광주)라는 항변은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수능부정이 광주 외에도 서울, 전북, 전남, 마산, 충남, 인천 등 전국 곳곳에서 일어났던 것으로 밝혀지자 사정이 달라졌다.

이때부터 광주와 전라도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던 목소리는 눈에 띄게 준 대신 “거봐라, 니들은 뭐가 다르냐”며 그 동안 억눌렸던 감정을 분출시키는 글들이 증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역공은 곧 잠잠해지면서 이대로 사태가 마무리 되는듯 싶었다.

그러던 차에 미묘한 사건이 발생했다.

2일 새벽 부산에서 한 40대 취객이 뺑소니차에 연쇄적으로 치여 처참하게 사망한 사고가 일어난 것.

최초로 피해자를 치어 숨지게 한 차량은 그대로 달아나고 주변에서 이 광경을 목격한 다른 차량 운전자들도 그냥 지나쳤다. 보도에 쓰러져 있던 피해자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또 다시 친 다른 차량 운전자들도 그대로 도망쳤다.

광주 수능사태에 대한 반작용 이었을까.

이 사건이 보도돼자 이번에는 부산과 경상도를 저주하는 글 들이 인터넷 게시판을 뒤덮었다.

“경상도는 인정머리가 없다”(limjs0226) ,“현상수배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서울 길거리에서 가장 싸움 많이 하는 사람들은 경상도”(won4won) .

역시 아무런 근거도 없는 헐뜯기 글이 주류를 이뤘다.

게다가 3일 부산에서 학부모가 주도한 대리시험이 적발됐다는 뉴스는 불난집에 부채질을 한 격이었다.이 보도가 알려진뒤 부산과 경상도 ‘죽이기’는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사태가 이렇게 다시 악화되자 양식있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망국적인 지역감정 악령’을 떨쳐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최영’씨는 “대한민국사람끼리 왜들 그러시냐”며 “영호남을 제외한 지역 사람들이 어느 지역을 욕하면 왜 영호남싸움으로 변하는지 모르겠다‘며 씁쓸해 했다.

‘ceoyouth’는 “이 좁은 나라에서 지역감정 부추기는 저급한 욕설만은 삼갔으면 한다”며 “남북한 다 합쳐도 미국 텍사스주의 1/3도 안 되는 땅덩이에서 이미 남북으로 갈라진지 반세기인데 또다시 동서로 찢어지길 원하는가”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온라인상에서는 익명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규범의 영향력을 적게 받는다"면서 "자기를 숨긴채 탈 규범적인 행위나 표현을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강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온라인에서 유독 ‘막말’이 성행하는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인터넷에서는 개인이 타자의 의견을 받아들일 때 제한된 문구만 보고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등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개념에 끼워 맞추는 경향이 있다”며 “중간의견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극단적인 의견들이 대립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사태도 개인들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던 지역감정의 요소가 드러난 것”이라며 “인터넷은 기록이 남는 대화공간이기 때문에 지역감정 발언이 누적돼 더욱 확대될 위험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해식 동아닷컴기자 pistol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