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부정 가담 학생 ‘눈물의 후회’

  • 입력 2004년 11월 24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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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광주의 모 고교 상담실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부정행위 사건에 연루된 141명 중 한 명인 3학년 이모군(18)을 담당 교사와 함께 만났다.

이군은 이번 사건에서 돈을 지불하고 ‘선수’들이 보내 준 정답을 받은 ‘수혜자’. 그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상태에서 처음엔 쉽게 말문을 열지 못하고 연방 “부모님과 선생님께 죄송하다”는 말만 거듭했다.

이군이 밝힌 그간의 경위와 반성의 심경 등을 구술 받아 ‘참회록’으로 재구성했다.

“9월쯤 부정행위 소문을 들었을 땐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의 소개로 ‘원멤버’를 만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원멤버는 ‘과목당 30만원 정도 내면 대학생이 관리한 답을 보내 준다’며 ‘돈은 천천히 줘도 된다’고 말했다.

이후 나 말고 다른 아이들도 무척 많이 있다는 걸 알고 마음이 흔들렸다. 성공하면 지방대는 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아들 대학 가는 게 소원인 부모님 생각이 들자 절박한 마음까지 들었다.

돈은 수능 10일 전쯤 2과목의 비용으로 50만원을 주기로 약속했다. 어머니에게 학원비라며 받은 40만원을 먼저 주고 나머지 10만원은 성공한 뒤 주기로 했다. 지금도 학원비로 알고 돈을 주며 흐뭇해하시던 어머니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수능 당일 1교시는 답을 받기로 한 과목이 아닌데도 긴장됐다. 휴대전화를 가진 것도 괜히 부담스러웠다. 어쩌다 옆에서 부스럭 소리만 나도 내 휴대전화 소리인 것만 같아 놀라곤 했다.

답을 받기로 한 2, 3교시는 더욱더 심했다. 집중이 안 돼 쉬운 문제도 풀리지가 않았고, 도착한 답도 자신이 없어 꺼내보질 못했다.

다음날 부정행위가 들켜 주동자들이 경찰에 잡혔다는 얘기를 들었다. 학교와 경찰에서 부모님에게 연락이 왔을 때는 차라리 죽고 싶었다. 생전 처음 간 경찰서는 너무 두려웠다.

그러나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나의 책임이고 나의 실수다. 한때의 유혹을 견디지 못한 나 자신이 참을 수 없이 원망스럽다. 나를 믿어 줬던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들에게 미안하단 말밖엔 할 말이 없다.

다만 별 책망 없이 평소처럼 대해 주시는 선생님과 친구들이 고맙다. 솔직히 죗값을 빨리 치르고 모든 걸 잊고 싶다.”

광주=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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