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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0월 8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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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홍씨는 1976년 초 세 자녀를 두고 집을 나갔으며 1983년 박모씨를 만나 그 다음해부터 동거를 시작해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다. 홍씨는 박씨와의 사이에서도 아들 하나를 두었다.
홍씨의 원래 남편(법률상 남편)인 임씨는 재혼하지 않았으며 최근 홍씨에게 재결합을 요구했다. 홍씨는 이를 거절하고 거꾸로 정식 이혼을 요청했다. 임씨도 이를 거절했고, 홍씨는 이혼소송을 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엇갈린 판결을 내렸다. 1, 2심을 맡은 서울가정법원은 홍씨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였으나 대법원은 지난달 24일 ‘원심판결이 잘못됐다’며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 사건에서 원심과 대법원이 공통으로 인정한 사실은 다음 두 가지다. 첫째 홍씨와 임씨의 혼인생활은 ‘28년 별거’로 이미 파탄상태에 이르렀다는 것, 둘째 그 파탄의 주된 책임은 집을 나간 홍씨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파탄책임자가 이혼을 요구할 경우 이혼을 허락할지에 관해 상반된 견해가 있다. ‘유책(有責)주의’와 ‘파탄(破綻)주의’다.
전자는 ‘이혼청구는 피해자의 권리’이며 홍씨처럼 혼인파탄에 책임이 있는 쪽엔 이혼청구권이 없다는 것. 반면 후자는 파탄상태라는 ‘현실’을 중시해 어느 쪽의 청구인지를 따지지 않고 이혼을 허락해야 한다는 것. 파탄에 대한 책임은 위자료 등에서 따지면 된다는 견해다.
세계적 추세는 파탄주의로 기울고 있으며 특히 서구에서는 대부분 파탄주의를 택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대법원 판례는 민법의 이혼관련 규정에 근거해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법원은 사안에 따라 파탄주의를 인정하는 판결을 해 왔다. 위의 사례에서도 1, 2심 재판부는 ‘책임’보다 ‘현실’에 비중을 둬 이혼청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엄격한 유책주의를 다시 확인했다. 대법원 제1부(주심 고현철·高鉉哲 대법관)는 판결문에서 “혼인생활의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그 파탄을 사유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며 “부부로서의 동거 부양 협조 의무를 저버린 원고 홍씨의 잘못이 더 큰데도 이혼청구를 받아들인 원심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수진(金秀珍)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이 너무 완고하다”며 “사안에 따라 ‘파탄의 현실’을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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