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법원은 부부 사이의 강간을 인정하지 않았다. 1970년 대법원은 남편이 폭력으로 아내를 강간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에 재판부는 30여년이 지난 판례는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유죄선고를 내렸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도 형법상 부부 사이의 강간이나 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하고 있다.
새 판결은 시대적 사회적 변화를 담아내고 여성 및 가정문제에 대한 법해석에 전향적 자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여성계에서 즉각 환영의사를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내 아내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일방적 인식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한편에서는 지나치게 여성 편향적 판결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부부 사이의 내밀한 영역을 법의 잣대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늘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다. 그러나 부부 문제에는 타인이 간섭할 수 없다는 통념으로 인해 가정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법적 배려는 필요하다. ‘성적 자기결정권’이 아내는 물론 남편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에 이번 선고가 반드시 남성에게 불리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대법원 결정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번 판결은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보호 측면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다만 향후 집행과정에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잘못 남용될 여지를 줄이는 방안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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