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내 性추행’ 첫 유죄 선고의 의미

  • 입력 2004년 8월 22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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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원하지 않는데도 폭력을 사용해 성추행한 남편에게 유죄가 처음 선고됐다. 이는 성행위에서 당사자의 의사가 존중돼야 한다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부부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법원은 부부 사이의 강간을 인정하지 않았다. 1970년 대법원은 남편이 폭력으로 아내를 강간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에 재판부는 30여년이 지난 판례는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유죄선고를 내렸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도 형법상 부부 사이의 강간이나 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하고 있다.

새 판결은 시대적 사회적 변화를 담아내고 여성 및 가정문제에 대한 법해석에 전향적 자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여성계에서 즉각 환영의사를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내 아내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일방적 인식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한편에서는 지나치게 여성 편향적 판결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부부 사이의 내밀한 영역을 법의 잣대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늘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다. 그러나 부부 문제에는 타인이 간섭할 수 없다는 통념으로 인해 가정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법적 배려는 필요하다. ‘성적 자기결정권’이 아내는 물론 남편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에 이번 선고가 반드시 남성에게 불리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대법원 결정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번 판결은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보호 측면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다만 향후 집행과정에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잘못 남용될 여지를 줄이는 방안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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