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한국의 검찰은]<下>검찰권 독립과 분산

  • 입력 2004년 8월 20일 19시 00분


코멘트
지난 수십년간 검찰의 최대 과제는 ‘검찰권 독립’이었다. 정치권력의 부당한 간섭에서 벗어나 검찰권을 공정하게 행사하는 것이 일선 검사와 시민의 여망이었다.

송광수(宋光洙) 검찰총장 체제에서 검찰의 정치적 예속 논란은 거의 수그러들었다. 그 대신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가 ‘검찰권 분산’이다. 비대해진 검찰 권한을 경찰 등으로 분산하고 견제하자는 것이다.

검찰권 분산 그 자체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와 시민단체, 일부 검사들도 공감을 표시한다.

그러나 그 의도와 방향에 대해서는 의견과 논란이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정치권이 제기하는 검찰권 분산 주장에 대해 “변형된 형태의 새로운 정치적 간섭”이라고 의심한다.

▽검찰권 독립의 현주소=1999년 1월 ‘검찰 항명파동’의 주역 심재륜(沈在淪·변호사) 당시 대구고검장은 ‘국민 앞에 사죄하며’라는 성명서에서 검찰의 정치적 예속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그는 “검찰 수뇌부는 권력만 바라보고 권력의 입맛대로 사건을 처리해 왔으며 심지어 권력이 먼저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권력의 뜻을 파악해 시녀가 되기를 자처해 왔다”고 지적했다.

20일 심 변호사를 찾아 현 검찰의 ‘정치적 중립 점수’를 질문했더니 ‘89점’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90점이면 만점이나 다름없는데 자만하지 말고 좀 더 잘하라는 의미에서 1점을 뺀다”고 말했다.

재야 법조계와 시민단체의 의견도 심 전 고검장의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시민단체의 문제 제기도 최근에는 거의 없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대선자금 수사다. 형평성 시비가 있기는 했지만 검찰은 현직 대통령의 실세 측근들까지 당당하게 처리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중견 검사는 “정치적 중립에 관한 한 검찰은 지금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권의 분산 추진=정치적 중립을 어느 정도 이뤄낸 검찰은 이제 ‘검찰권 분산’의 ‘시험’에 들었다.

청와대와 여당 등 정치권에서는 검찰에 수사권과 기소권 등이 과도하게 집중됐다며 그 집중된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방안들을 추진하려 한다.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축소 또는 폐지 논란이 그것이다.

법무부가 형사 및 기획 분야를 강화하고 공안 특수 분야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검찰조직 개편작업을 추진하는 것도 검찰 권한의 분산과 무관치 않다.

정부 여당은 더 나아가 경찰 수사권 독립까지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특정 비서관은 최근 경찰 수사권 독립에 관한 보고서를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성 배제하고 논의해야=그러나 이 같은 검찰권 분산에 대해서는 검찰 내부와 외부에서 반발 및 비판이 적지 않다. 그 의도가 불순하다는 것이다.

지방의 한 중견 검사는 “최근의 검찰권 분산 논의는 실질적인 필요성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며 검찰에 대한 보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검사는 “검찰권 분산과 통제 주장의 주된 출처가 정치권”이라며 “그것은 정치인들이 독립된 검찰권 행사로 인해 불편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분산이든 강화든 현재의 검찰시스템은 분명히 개선의 필요성과 여지가 있다”며 “그러나 정치적 동기와 의도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논의해야 건전한 합의와 결론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한국 검찰은 사법의 독재자”▼

“한국의 검찰제도 형성은 형사사법의 독재자로서의 지위 완성 과정이다.”

서울대 법학연구소 연구원인 문준영 박사는 2월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검찰 제도의 형성과 역사적 발전’이라는 논문에서 한국 검찰의 막강한 권한과 영향력의 근원을 이렇게 분석했다. 이는 한국 검찰 체제를 분석한 첫 논문이다.

문 박사는 이 논문에서 “19세기 말 일본의 과도기적 검찰제도에서 출발한 한국 검찰 제도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줄곧 검찰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전개됐다”고 주장했다.

일제강점기에서의 검찰제도는 거의 모든 수사활동을 합법적으로 보장하는 ‘검사의 천국’이었으며 경찰을 완전히 통제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가 내려졌다고 논문은 지적했다.

광복 이후에는 검찰기구 강화를 위한 검찰청법의 입법이 이뤄졌으며 이후 한국 검찰은 수사권과 수사지휘권에 대한 모든 법적 권한을 유지하게 됐다는 것이다.

군사정권 시절 검찰은 스스로 정치도구화하면서 검찰권을 제어하던 장치가 모두 없어지고 이로 인해 ‘권위주의 독재체제의 수호자’이자 ‘사법의 독재자’로서의 검찰이 탄생했다고 문 박사는 주장했다.

문 박사는 “이런 체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서서히 해체되고 있지만 아직 어두운 그림자가 남아 있다”며 “한국 검찰은 민주주의 체제에 맞는 새로운 틀을 찾아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찰의 한 중견 간부는 “행정기관의 성격과 준사법기관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는 검찰의 특성상 정치적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의 문제”라고 말했다.

또 다른 간부는 “검찰 내부 상황을 제대로 보지 않고 너무 한쪽 시각에서만 분석한 편향적인 논문”이라고 말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