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만 검거]경관 살해범도 시민이 잡았다

  • 입력 2004년 8월 8일 23시 26분


8일 저녁 경찰에 붙잡힌 경찰관 살해범 이학만씨가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있다. 이씨는 검거되기 전 자신의 복부와 가슴 등 5곳을 흉기로 찌르는 등 자해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8일 저녁 경찰에 붙잡힌 경찰관 살해범 이학만씨가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있다. 이씨는 검거되기 전 자신의 복부와 가슴 등 5곳을 흉기로 찌르는 등 자해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이번에도 시민이 일등공신이었다.

경찰관 2명을 살해하고 도주행각을 벌인 이학만씨(35)를 8일 검거할 수 있었던 것도 한 시민의 놀라울 정도로 침착한 대응과 신고 덕분이었다.

이씨가 침입한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모 빌라 주인 박모씨(49·여)는 손자(4)와 함께 흉기로 위협을 당하는 순간에도 이씨를 안심시킨 뒤 몰래 아들에게 전화를 해 경찰이 출동하도록 했다.

▽긴박했던 검거과정=이씨는 이날 오후 2시경 강서구 방화동 박모씨의 2층 빌라에 열려진 창문을 통해 침입했다.

이씨는 목욕을 하고 있던 박씨와 박씨의 손자를 흉기로 위협해 안방에 감금했다. 이씨는 “내가 경찰을 죽인 이학만이다. 놀라지 말라”고 말했으며, 박씨는 “신고는 절대 하지 않겠다”며 국수와 과일까지 주며 안심시켰다.

박씨에게 호의를 느낀 이씨는 이후 “나는 성폭행범이 아니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자가 배신했다” “나도 모르게 경찰을 죽였다. 몇 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며 경찰 살해 과정과 옛 애인에 대한 넋두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박씨는 오후 6시경 이씨에게 “작은방에 컴퓨터가 있는데 인터넷을 하라”고 유도했다. 이후 박씨는 거실 청소를 하는 척하면서 진공청소기를 켜놓은 채 안방으로 들어가 아들 신모씨(28)에게 오후 6시30분경 휴대전화로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신씨는 곧바로 “이학만과 비슷한 사람이 어머니와 함께 있다”고 112에 신고했고,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다.


박씨는 경찰 순찰차가 오는 모습을 보고 베란다에서 손짓을 했지만 경찰은 이를 못 보고 현관문을 두드리고 초인종을 눌렀다. 박씨는 황급히 손자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간 뒤 문을 잠갔으며, 이씨는 박씨에게 “왜 신고를 했느냐. 화장실 문을 열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박씨가 문을 열지 않자 이씨는 “아줌마, 나 죽으러 가요”라고 말한 뒤 안방으로 가 흉기로 자신의 복부 등 5군데를 찔렀다.

이후 경찰은 베란다를 통해 빌라 안으로 들어가 쓰러져 있던 이씨를 검거했다.

▽이씨 상태 및 유족 반응=이씨는 양천구 목동 이대목동병원으로 옮겨져 장기 손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컴퓨터단층촬영(CT)을 받은 뒤 간단한 봉합수술을 마쳤다.

경찰은 “이씨의 장기 손상이 심하지 않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씨가 안정을 찾는 대로 수사를 진행, 이씨에 대해 살인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한편 이씨에 의해 살해된 고 심재호 경위(32)의 부인 황모씨(33)는 이씨 검거 소식에 “남편이 도와줬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황씨는 “7일 오후 조계사에서 열린 남편의 천도재에서 간절히 빌었는데 바로 다음날 범인이 검거됐다”며 눈물을 흘렸다.

고 이재현 경장(27)의 아버지 이성형씨(56)는 아들의 인터넷 미니홈페이지에 ‘아들아 그놈 검거했다고 너 동료들이 전화 왔어. 이 아버지가 그나마 견딜 수 있겠구나. 범인 사진을 보니 인상이 그리 험하지 않은데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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