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한인입양인대회]“내딸 수미를 찾아주세요”

  • 입력 2004년 8월 5일 18시 57분


코멘트
32년 전 입양 보낸 딸을 찾고 있는 김옥희씨(56·여)가 5일 오전 ‘2004 세계한인입양인대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소피텔앰배서더 호텔 앞에서 딸 김수미씨(33)의 사진을 붙인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전영한기자
32년 전 입양 보낸 딸을 찾고 있는 김옥희씨(56·여)가 5일 오전 ‘2004 세계한인입양인대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소피텔앰배서더 호텔 앞에서 딸 김수미씨(33)의 사진을 붙인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전영한기자
“몇 번 죽을 고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입양 보낸 딸 수미를 생각했어요. 수미를 만날 때까지는 절대 눈감을 수 없어요.”

5일 오전 7시 ‘2004 세계한인입양인대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소피텔앰배서더호텔 앞.

김옥희씨(56·여)가 32년 전 미국으로 입양 보낸 딸 김수미씨(33)의 사진을 붙인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김씨는 해외 입양인들이 서울로 대거 모인다는 보도를 보고 용기를 내 호텔을 찾은 것.

김씨는 “1972년 한국사회봉사단을 통해 입양시킨 첫아이 수미를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며 “혹시나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에서 왔다”고 말했다.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했던 김씨는 결혼 전 사랑했던 한 남자와 장래를 약속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아이가 태어난 직후 그 남자는 갑작스러운 복막염으로 숨졌다.

어떻게든 딸을 키우고 싶었던 김씨는 공장에서 일하는 시간만이라도 친정어머니에게 수미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으나 친정어머니는 불쌍한 딸을 생각해 손녀의 입양을 추진했다.

김씨는 “주변 사람들이 내가 키우면 딸이 배를 곯고 제대로 공부도 못할 것이 뻔한데 좋은 곳으로 입양 보내는 게 훨씬 낫다고 설득했다”면서 눈물을 흘리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 후 딸 생각에 하루도 편히 잘 수가 없었다는 김씨는 1979년 현재의 남편과 결혼해 외동딸을 뒀다. 김씨의 과거를 이미 알고 있는 가족들은 김씨의 딸 찾기를 적극 후원하고 있다.

며칠 전 김씨는 한국사회봉사단에 전화했다가 1995년에 딸이 어머니를 찾았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됐다.

김씨는 “수미가 나한테 주라고 기관에 맡겨놨던 사진과 편지를 보고 펑펑 울었다”며 “내가 항상 그려왔던 예쁘고 씩씩한 딸아이의 모습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1995년 당시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했던 수미씨는 친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 ‘항공사 승무원으로 한국에 자주 왔다 갔다 하는데 그때마다 엄마가 그리웠다. 좋은 양부모 만나 잘 자랐으니 걱정하지 말고, 어머니를 빨리 찾고 싶다’고 적었다.

김씨는 “사람 찾기를 하는 모 방송국 프로그램을 하루도 빠짐없이 봤다”며 “딸아이도 나를 만나고 싶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