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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6월 14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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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검사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지만 이들이 남긴 ‘마지막 말’에는 덕담과 자긍심이 주로 담기던 예전과 달리 참회와 회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배어 있다. 숨 가쁘게 진행돼 온 검찰의 인사 및 조직개편, 변호사 업계의 극심한 불황 등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것이 주변의 관측.
▽참회=‘한 줌도 안 되는 권한이 있다고 그것을 사유물처럼 남용하지는 않았는지, 권한을 남용하면서 그것을 즐기는 만용을 부리지는 않았는지, 또한 권위를 보인다며 권위주의자가 된 적은 없었는지 두려움이 앞섭니다. 저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가지신 분들에게는 부디 제 모든 허물을 잊고 용서해 달라고 부탁을 드립니다.’
서울고검을 끝으로 25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친 부장검사는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며 이 같은 반성과 참회의 글을 올렸다.
한때 ‘잘나갔던’ 재경지역 부장검사도 사죄의 말로 검사 생활을 맺었다.
‘아낌없는 지도와 성원을 해주셨던 많은 분들과 함께 저로 인해 적지 않은 고통과 애로를 느끼셨을 분들까지 뇌리를 스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과 함께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회한과 반발=밀려서 떠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일부 검사들의 인사말에는 회한과 반발이 묻어 있다. 서울고검에서 지방 고검으로 발령이 나자 사표를 낸 검사는 ‘조금은 당돌할지도 모르는 사직인사-오호 통재라!’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인사에 대한 불만을 나타냈다.
‘검찰이, 조직관리가, 인사개혁이 무엇이기에 마음을 아프게 한단 말입니까. 저 자부심 많고 경륜 있는 엘리트들의 심성을 짓밟는 권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선별되는 자 누구이고, 묵묵히 인내하는 자 누구이며, 떠나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수도권 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이런 글을 남겼다.
‘16년간 검찰 생활이 사직원 한 장으로 마무리되는 걸 보면서 한편으론 허망하고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사표를 제출했다고 집으로 전화를 하니 집사람이 괜히 울먹입니다. 지난 일요일 오대산 비로봉을 오르면서 마음을 가다듬어 결정을 내렸는데 제 마음도 가슴 한 구석에 아련한 아픔이 느껴집니다.’
▽불안감=퇴직 검사들은 대부분 변호사 개업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새 길에 대한 희망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고 말했다. 변호사 업계의 불황과 자신의 울타리가 되어 준 조직을 떠나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 검찰을 떠나게 되면 저도 변호사로서 새 길을 가고자 합니다. 아직도 두려움을 떨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라면 용기를 내어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겠습니다.’(서울고검 부장검사)
지방 지청장을 끝으로 20여년의 검사생활을 접은 검사는 “‘검사스러움’이 부담이 되어 당분간 개업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보내는 자의 심정=떠나는 선배들을 보는 후배들의 마음도 당연히 편치 못하다.
대검의 한 검사는 역시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혜성처럼 사라지는 별들, 답답한 가슴, 게시판 보기가 두렵다”며 착잡한 심경을 표현했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중견 검사들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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