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입시 모의논술고사]논제

  • 입력 2004년 4월 22일 19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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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문 1]은 기계의 발달이 시장체계를 발전시켰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고, [제시문 2]는 철도의 부설이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변화시켰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두 제시문의 논지를 발전시키고 그것들을 서로 연결하여 산업혁명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기계의 발전이 인간의 ①사회적 관계와 ②문화적 양식을 어떻게 변화시켜 왔으며, 이러한 변화가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논술하시오.

■제시문1

정교한 기계는 매우 비싸기 때문에 대량의 상품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거래되지 못한다. 그것은 상품의 판매가 적절하게 보장되고 기계에 투입할 원료가 중단없이 공급될 수 있을 때에만 손실없이 작동될 수 있다. 상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은 모든 생산 요소가 구매 가능하다는 것, 즉 돈만 내면 얼마든지 이것들을 사들일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대규모 전문화된 기계를 이용한 생산은 자기 자금을 투입하는 상인의 관점에서나 수입․고용․공급을 지속적 생산에 의존하게 된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나 상당한 위험을 떠안게 될 것이다.

그런데 농업사회라면 그러한 조건들이 당연하게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창조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조건들이 비록 점진적으로 창조된다고 해도 거기에 포함된 놀랄 만한 변화의 본질은 여전히 같다. 이때의 변화는 사회 성원들의 행위 동기의 변화를 요구한다. 즉 생산의 동기가 이윤 동기로 대체되어야 한다. 모든 거래는 화폐거래로 바뀌고 또 교환의 매개체가 경제생활의 모든 마디 속에 끼어들 것을 요구한다. 모든 소득은 무엇인가의 판매로부터 나오게 된다. <시장체계>라는 용어 속에는 이 말에서 느껴지는 단순한 의미 이상의 것이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이 체계의 가장 놀라운 독특성은 일단 이것이 성립되면 외부 간섭없이 기능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 이익은 더 이상 자동적으로 보장되지 않으므로 상인은 그의 이익을 시장에서 만들어내야 한다. 가격은 스스로 규제되도록 허락되어야 한다. 이 같은 시장의 자기조정적(self-regulating) 체계야말로 우리가 <시장체계>라는 용어로서 의미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전의 경제로부터 이러한 체계로의 전환은 지극히 완벽한 것이어서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이라는 말로서 표현하기보다도 차라리 애벌레의 탈바꿈으로 표현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여기에서 생산자의 행위를 생각해 보라. 그는 판매를 위해서 구매자를 직접 찾을 필요가 없다. 그는 단지 시장에 상품을 내놓으면 된다. 한편 그가 구매하는 것은 원료와 노동, 즉 자연과 인간이다. 이 역시 시장에서 얻을 뿐이다. 상업사회에서 기계제 생산은 결과적으로 사회의 자연적․인간적 실체를 상품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토지나 노동 같은 것은 분명 상품이 아니다. 매매되는 것들은 모두 판매를 위해 생산된 것일 수밖에 없다는 가정이 이 두 가지에 관한 한 적용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상품에 대한 경험적 정의를 따르자면 이것들은 상품이 아니다. 노동이란 인간 활동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인간 활동은 인간의 생명과 함께 붙어 다니는 것이며, 판매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이유에서 생산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활동은 생명의 다른 영역과 분리할 수 없으며, 비축할 수도 없고, 사람과 떼어 내어 동원될 수도 없다. 그리고 토지란 단지 자연의 다른 이름일 뿐인데, 자연은 인간이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노동과 토지를 상품으로 묘사하는 것은 전적으로 허구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노동과 토지가 거래되는 현실의 시장들은 바로 그러한 허구의 도움을 얻어 조직된다. 이것들은 시장에서 실제로 판매되고 구매되고 있으며, 그 수요와 공급은 현실에 존재하는 수량이다. 어떤 법령이나 정책이든 그러한 생산 요소 시장이 형성되는 것을 억제한다면, 결과적으로 시장체계의 자기조정을 위태롭게 만든다. 따라서 이러한 상품 허구는 사회 전체와 관련하여 결정적인 조직 원리를 제공하는 셈이며, 이 원리를 사회의 거의 모든 제도에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제시문2

증기기관에 의해 인간과 세계의 공간은 단축되었다. 철도의 출현으로 이질적인 공간은 균질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거리의 마찰이 극복됨으로써 각 지역의 고유성은 파괴되고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공간으로 흡수되었다. 철도가 이동하는 곳마다 도시들이 솟아났다. 철도는 인간의 공간지배력을 급속하게 넓혔다. 상품 유통이 촉진됨에 따라 자족적인 지역경제는 국민경제로 수렴되었다. 또 인간이 자연의 순환적 리듬에서 벗어나 인공의 기계적 리듬에 호흡을 맞추게 된 것도 철도 때문이었다. 철도는 인간에게 기계적 시간을 강제했다. 철도시간표는 지역적 시간을 해체하고 통일적인 시간을 부여했다.

철도가 공간과 시간을 없앤다는 생각은 그때까지 우리 마음 속에 각인되어 있던 교통 기술이 갑자기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었다고 느끼는 인지(認知)의 현실 상실로 이해할 수 있다. 철도가 만들어낸 공간-시간 관계는 과거 수송수단이 만들어냈던 공간-시간 관계에 비하면 추상적이고 방향성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철도는 더 이상 이전의 마차와 길처럼 전경(前景)이라는 공간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공간을 관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이네는 전통적인 공간-시간 의식이 이렇게 혼란을 겪게 된 순간을 포착해 냈다. 1843년 파리에서 루앙과 오를레앙으로 가는 노선이 개통되었을 때 그는 <무시무시한 전율, 결과를 예상할 수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 엄청난 일, 혹은 전례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느끼는 그러한 무시무시한 느낌>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그는 철도를 화약과 인쇄술 이래로 <인류에게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 삶의 색채와 형태를 바꾸어놓은 숙명적 사건>이라고 불렀다. 나아가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제 우리의 직관 방식과 우리의 표상에 어떤 변화가 생길 것임에 틀림없다! 심지어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들도 흔들리게 되었다. 철도를 통해서 공간은 살해당했다...... 이제 사람들은 3시간 반 내에 오를레앙까지, 그리고 꼭 같은 시간 내에 루앙까지 여행한다. 이 노선들이 벨기에와 독일까지 연결되고 또 그곳의 철도들과 연결된다면, 어떤 일이 초래될 것인가? 내게는 모든 나라에 있는 산들과 숲들이 파리로 다가오고 있는 듯하다. 나는 이미 독일 보리수의 향내를 맡고 있다. 내 집 문 앞에는 북해의 파도가 부서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동일한 하나의 변화가 지니는 두 가지 모순적인 계기들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철도는 한편으로 이제까지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새로운 공간들을 열어놓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일을, 그 사이의 공간을 없앰으로써 가능하게 했다. 느리고 노동집약적인 원시기술적인 수송에서는 완전히 감내해야만 했던 사이 공간 혹은 여행 공간이 기차 수송에서는 사라졌다. 기차는 단지 출발과 목적만을 안다. 1840년에 쓰여진 프랑스의 한 텍스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철도는 단지 장소로 드러나는 출발, 정지 그리고 도착만을 안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철도는 이들 사이를 가로질러 가고, 거기에서 단지 쓸모없는 구경거리만 제공하는 그 사이 공간들과는 아무런 연관도 갖지 않는다.>

전통적인 여행 공간이었던 목적지들 사이의 공간이 사라지면서, 이 목적지들은 서로서로 접근하고 충돌도 한다. 이 목적지들은 과거의 ‘지금’과 ‘여기’를 잃어버렸다. 이런 것들은 중간의 사이 공간을 통해 규정되어 왔다. 그 안에서 장소들이 서로서로에게 공간적 거리를 생겨나게 했던 고립이 지워져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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