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닭-오리 사육농가 르포…“이젠 희망이 보여요”

  • 입력 2004년 2월 17일 18시 48분


코멘트
“이제 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습니다. 두 달간 거의 죽을 지경이었는데 전국에서 닭 오리고기 소비촉진 캠페인이 펼쳐지고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16일 오후 닭 오리 사육농가들이 밀집한 전남 나주시 왕곡면. 지난해 12월 20일 조류독감이 발생하면서 쑥대밭이 되다시피 한 이 마을에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한동안 볼 수 없었던 트럭들이 닭과 오리를 실어 나르고 양계장에서는 출하를 앞둔 달걀을 주워 담는 주민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관공서와 시민단체 등이 전개하고 있는 사육농가 돕기 운동으로 닭고기와 오리고기 소비가 점차 늘고 있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이제 희망이 보인다”면서 모처럼 환한 표정을 지었다.

나주시는 전국 닭 사육농가의 11%, 오리는 17%를 차지하는 국내 최대 주산지.

사육농가들은 지난해 경기 불황으로 닭 오리고기 소비가 전년에 비해 10% 정도 줄어 어려움을 겪던 중 12월 국내 2위 닭 오리고기 가공업체인 ㈜화인코리아(나주시 금천면)가 부도를 내고 조류독감마저 발생하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조류독감 발생 농가와 의심 농가에서 오리 21만7000여마리가 도살처분됐다. 한 달 동안 이동제한 조치가 취해진 탓에 농가마다 출하 못한 닭과 오리로 넘쳐났다. 사료 값이 없어 먹이를 주지 못한 농가에서는 연일 닭과 오리 수십 마리가 죽어나갔다.

“농가들이 벼랑 끝까지 몰렸습니다. 이런 상황이 더 계속된다면 아마 살아남을 농가는 없을 겁니다.”

왕곡면 봉학마을에서 산란계 10만마리를 키우고 있는 김복남(金福男·52)씨는 “뒤늦게나마 각계에서 닭 오리고기 먹기 운동을 벌이고 있어 버틸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조류독감과 달걀과는 관계가 없는데도 달걀 소비가 급감하면서 1개에 75∼80원하던 달걀 도매가격이 61원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69원까지 회복했다. 하지만 달걀 1개를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이 76원인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적자는 불가피한 실정이다.

반남면에서 닭 7만5000여마리를 기르는 정모씨(42)는 “한동안 육계용 닭 3만여마리를 출하하지 못해 낙심하고 있었는데 최근 소비운동에 힘입어 1.5kg짜리 도매가격이 800원에서 1000원으로 올라 다소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사육농가들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소비 촉진운동이 전시용이나 일회성 행사로 그치지 않고 정부에서도 이 기회에 농가들을 살릴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종선(金鍾善) 대한양계협회 광주전남지회장은 “사람이 닭고기를 먹고 조류독감에 걸릴 확률은 제로인데도 막연한 공포감이 사육농가들을 파산 위기로 내몰았다”면서 “전국 80만 농가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많이 먹고 많이 사주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주=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