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복씨 원본 글

  • 입력 2004년 2월 6일 17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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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를 수구(守舊) 골통이라 몰아부치는 젊은이들이여! 이 글을 읽어보렴.

너희가 조국을 위해 과연 얼마만큼의 땀과 눈물을 흘렸느냐? 지금 너희들이 느끼는 편안함 뒤에는 지난날 너희들 또래 젊은이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배어 있음을 너희들이 알고 있느냐?

5·16혁명 뒤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F.케네디였다.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까지 갔지만 끝내 그는 박정희를 만나 주지 않았다. 호텔에 들어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되어 공산당과 대치하고 있는 서독에 미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데 성공했다.

서독에 간호사와 광부들을 보내 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힌 것이다. 당시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무려 4만6,000명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봐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간신히 면접에 합격한 사람도 있었다. 출국장인 김포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과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이 바다가 되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 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굳은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하루종일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과 달리 열 몇 시간을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일을 한 것이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들과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코리안 엔젤'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기도 했다.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은 서독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항공사와 계약까지 체결했지만 쿠데타 정부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다행히 서독 정부가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 나라에 보내 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거리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절 만세!"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절 만세!" 독일어를 모르는 박 대통령은 창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큐! 땡큐!" 를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하기 위해 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대통령이 연설하기로 되어 있는 장소에 모여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 수행원들이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을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모두들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가 없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지하 1,000미터 속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힘든 일을 하는 제 나라 광부들을 보니 박 대통령은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 열심히 일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열심히 일 하자는 말만 반복했다. 광부들도 울면서 육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 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 자식같이 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 라고 위로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주세요. 우리 대통령님을 도와 주세요.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를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같이 울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 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주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 박 대통령은 "한국에 돈을 빌려주십시오, 여러분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 등록 국가 120여개국 중 필리핀은 국민소득 170여 달러, 태국은 220여 달러였지만 한국은 겨우 76달러였다. 세계 120여 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나라였다.

1964년에는 국민소득이 100달러가 되었다.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외국에 팔았다. 서울 간 아들 학비 때문에 머리카락을 잘랐고,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고, 곰 인형을 만들어 팔았다. 전국에 쥐 잡기운동을 벌여서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뭐든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결국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해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조국 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박 대통령이 왜 그토록 경제발전에 집착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이다. 그는'큰 아버지'였다.

적어도 지금 우리 세대와 더 나아가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을 생각할 줄 아는 책임감 있는 큰아버지였다. 박 대통령과 당시 세대들이 힘을 합쳐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수천 미터 지하에서 땀을 흘리며 일한 지난 세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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