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등대의 효시(嚆矢)인 팔미도등대가 점등 10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代)를 이어 불을 밝힐 새 등대가 22일 준공됐기 때문이다. 옛 팔미도등대 바로 옆에 세워진 새 팔미도등대는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높이 31m의 등탑과 사무실, 전시실, 광장 등을 갖추고 있다.
1903년 6월 1일 인천 중구 용유동 산 372에 세워진 옛 팔미도등대는 지난해 1월 인천시 지방문화재 40호로 지정돼 영구 보존된다. 열강들은 한반도를 넘볼 때마다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팔미도에 눈독을 들였다.
일본은 인천 개항(1883년) 때 조선과 체결한 ‘통상장정’에 ‘조선은 통상 이후 각 항을 수리하고 등대를 설치한다’는 조항을 내세워 등대 건설을 강권했다.
조선은 1902년 인천에 해관등대국을 설치하고 그해 5월부터 팔미도등대 건설에 착수해 1년 1개월 만인 1903년 6월 등대를 완공했다.
사학자들은 일본이 1904년 러-일전쟁에 대비해 팔미도등대 건설을 강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옛 팔미도등대는 첫 점등 때 석유등을 썼지만 54년 자가발전시설을 갖춘 뒤 전기등을 사용했다. 91년에는 태양광발전시설을, 99년에는 위성항법 보정시스템을 설치하는 등 한국 등대의 발전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팔미도등대 허근 소장(58)은 “팔미도등대는 우리 민족과 고난을 함께해 온 역사 그 자체”라고 말했다.
인천=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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