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회창씨 사과로 끝날 일 아니다

  • 입력 2003년 10월 30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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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SK비자금 사건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당연한 일이다. 지난 대선에서 자신의 당선을 위해 뛰었던 당직자들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 재정국장은 구속영장까지 청구됐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후보였던 이씨가 언제까지 입장 표명을 미루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사과하는 이씨의 얼굴에 회한이 가득했던 것처럼 이를 보는 국민의 마음도 착잡했을 것이다. 스스로 법과 원칙에 평생을 바쳐왔다고 자부하는 한 정치인이, 그것도 다수당의 총재이자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정치인이 불법 대선자금을 받아썼음을 시인하고 국민에게 사죄했으니 한국정치의 부패고리는 이렇게도 질긴 것인가.

이씨의 사과는 결코 쉽지 않은 결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의 사과가 정치자금 개혁을 앞당기는 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한나라당부터 이씨의 뜻이 퇴색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선자금 전반에 대한 특검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우선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정치판을 떠난 전 총재가 10개월 만에 사과문을 들고 국민 앞에 서게 된 의미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씨도 ‘이번 일로 당이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당부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사과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다. 유감스럽게도 이씨는 정작 국민이 알고 싶어 하는 의혹은 비켜갔다. 대선후보로서 SK비자금 유입 사실을 알았는지, 알았다면 언제 알았는지 등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았다. ‘내가 책임지기로 했으니 이런 점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한 게 전부다. 사과는 했다지만 국민은 여전히 궁금한 게 많다.

이씨가 좀 더 용기 있게 고백성사를 한다면 그 자체가 진흙탕에 떨어져 뒹굴고 있는 우리 정치판에 긍정적인 충격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씨의 고백성사는 다른 당의 고백성사로 이어지면서 정치개혁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이씨가 검찰 소환에 응한다고 했으니 아직도 기회는 남아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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