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말리다 매맞고…검문 하다 터지고…경찰 '동네북'인가

  • 입력 2003년 8월 31일 18시 31분


31일 오전 서울 강동경찰서 서부지구대에서 경찰관 두 명이 “포장마차에서 싸움이 벌어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한 경찰관들은 싸우던 남자들로부터 말린다는 이유로 걷어차이고 제복이 찢어지는 폭행을 당했다. 결국 이 행패는 경찰관 두 명이 추가 투입돼서야 진압됐다.

곧이어 택시요금 시비로 이곳에 연행돼온 30대 남자가 “인권을 무시한다”며 30여분간 행패를 부리다 책상 유리를 깨 공무집행방해로 입건됐다.

이처럼 시위 현장은 물론 일선 경찰서나 파출소에서 공권력을 무력화시키는 일들이 매일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다.

▽매 맞는 경찰=지난달 30일 밤에는 강모씨(43)가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D빌딩 앞에서 불심검문 중이던 서울경찰청 특수기동대 소속 신모 경장(32)을 “네가 뭔데 길을 막느냐”며 주먹으로 때려 치아 1개를 부러뜨렸다.

강씨를 조사한 경찰관은 “강씨가 술을 먹지도 않았으며 경찰을 막연히 미워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16일에는 김모씨(50)가 술에 취한 채 트럭을 몰고 경기 용인시 원삼치안센터(옛 파출소)로 돌진해 현관을 박살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술값 문제로 시비가 붙어 파출소를 찾았는데 경찰관은 없고 문이 잠겨 있어 화가 나서 그랬다”고 말했다.

또 지난달 24일에는 서울 북부경찰서 서부지구대 경찰관 4명이 취객들의 패싸움 현장에 출동했다가 20여분간 몰매를 맞아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고, 12일에는 인천 남동구 논현치안센터에서 혼자 근무하던 김모 경사(49)가 민원인에게 맞고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공무집행방해사범은 2000년 월 평균 785.4명에서 2001년 878.3명, 2002년 939.7명으로 크게 늘고 있다. 올해도 7월 말 현재 6431명으로 월 평균 918.7명이 검거됐다.

▽왜 그러나?=이 같은 공권력 경시 풍조에 대해 경찰의 일관되지 않은 법집행이 원인이라는 시각에서부터 탈(脫)권위 시대의 산물이라는 주장까지 해석이 다양하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김보환(金甫煥) 교수는 “경찰의 법집행에 일관성이 없고 시위 진압에 엄격함이 결여됐기 때문에 경찰을 우습게 보게 됐다”며 “경찰이 정권의 성향에 ‘코드’를 맞출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경찰이 시민으로부터 권위를 인정받기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울 일선서의 C방범순찰대장도 “요즘 공권력이 이름값을 하느냐”면서 “경찰 상층부에서 강조하는 ‘인내(忍耐)진압’이라는 것도 결국 이 눈치 저 눈치 보라는 뜻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조대엽(趙大燁) 교수는 “현 정권이 들어선 후 권위에 대한 해체가 시작됐지만 해체 이후 새로운 권위의 패러다임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 구석구석에 권위에 대한 무시가 팽배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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