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달구벌산책/여름은 간다

  • 입력 2003년 8월 22일 20시 48분


비가 온 뒤라 나무줄기가 물기를 머금어 질량감을 더한다.

뜰에는 자귀나무 꽃이 한창 자태를 뽐내고 있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숫 공작의 꽁지처럼 화사한 자귀나무의 꽃, 이 꽃의 핌과 함께 여름이 시작된다.

이제 머지않아 꽃은 지고 여름은 지나갈 것이다.

그 끝 무렵에 백일홍이 피었다는 화신(花信)과 함께 가을이 다가올 것이다.

짧은 봄날이 그 덧없음을 한탄하는 눈물에 잠겨 지나가듯 위세 당당한 여름도 어느 듯 가을에 자리를 양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세상 만사 모든 게 모질게 똬리를 틀며 항시 있을 듯 해도 때가 되면 어느 듯 사라진다.

시골(경주)에 살면 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그 변화에서 자연의 철리를 깨닫는다.

그 이치에 순응하고자 하다 보면 살아가는 무게가 무척 가벼워 짐을 느끼게 된다.

과거 법관으로 있을 때, 나는 검사들이 평생 검찰에 몸담을 듯 처신하는 것을 못마땅 하게 바라보았다.

그런 자세는 무리한 욕심을 낳기도 해 인권에 대한 충분한 배려를 막기도 하고, 부적절한 권력행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남 말 할 것 아니다.

법관직을 떠난 지 꽤 오래된 지금, 나 역시 법관직을 영구히 수행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관료의식에 젖어 순리에 따르지 못했던 점이 적지 않았음을 아쉬워한다.

요즘 신문을 펼쳐 보면 정치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당대에 국가적 개혁 작업을 모두 완수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하지만 너무 성급하고 주변과 충돌이 잦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정권이 아니면 다음 정권에서라도, 아니 우리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서라도 개혁을 완성시키겠다는 긴 호흡이 필요하지 않을까.

계절의 운행을 보면서 자연의 이치에 따라 세상사가 흘러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신 평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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