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첫 여성 재판관 지명자 전효숙씨 인터뷰

  • 입력 2003년 8월 22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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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효숙 지명자가 자신의 결혼생활을 얘기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원대연기자
전효숙 지명자가 자신의 결혼생활을 얘기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원대연기자
《1988년 헌법재판소가 창설된 이래 15년 만에 첫 여성 헌재 재판관으로 지명된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 전효숙(全孝淑) 부장판사. 20일 인터뷰를 위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부장판사 집무실을 찾아갔을 때 그는 책상 위에 가득 놓인 재판 관련 서류와 법전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대현(韓大鉉) 헌재 재판관의 임기가 끝나는 25일 재판관에 정식 임명될 예정이지만 그는 “임명되는 날에도 선고가 있고, 밀린 업무를 처리하려면 시간이 모자란다”며 인터뷰를 짧게 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차분하고 빈틈없는 인상인 그는 개인적인 신상에 관해서는 가급적 말을 아꼈다.》

―대법관 임명 제청 파문의 와중에 첫 여성 헌재 재판관이 됐는데….

“갑작스럽게 지명을 받아 당혹스럽기도 하고 막중한 임무를 어떻게 수행해 나갈지 염려도 된다. ‘어깨가 무겁다’는 말이 실감난다.”

―이번 대법관 인선 파문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이런 사태가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법원 내 갈등이 심화된 것처럼 국민에게 비쳐 법관으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선후배 판사들이 격의 없이 토론해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 기쁘다. 인사시스템을 비롯해 대법원이 직면한 여러 개혁과제를 수행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법원 안팎에서 대법원 구성 문제를 놓고 논란이 많다.

“대법원 구성보다 대법원의 운영방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처럼 대법관 1명이 한 달에 100건 이상의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대법원이 정책법원으로서의 기능을 하기 어렵다. 주요 이슈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고 생각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에 회부되는 사건을 선별하는 ‘상고허가제’를 도입해 국민에게 정말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만 판결하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우리 국민은 아직까지 대법원에서 판결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모든 제도가 그렇지만 사법제도도 결국 국민이 선택하는 것 아닌가. 국민이 3심제를 원한다면 지금의 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미국 연방대법원과 같은 기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모순된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일단 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이상은 미국 연방대법원에 있고 현실은 그렇지 못한데 국민이 대법원만 나무라면 법관의 한 사람으로서 괴로운 심정이 든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야 하나.

“최근 헌재와 대법원을 분리하는 나라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들었다. 헌재는 좀 더 고도의 정책적 판단을 요하는 사건을 다루고 대법원은 그런 사안을 뺀 나머지 법률에 대한 최고 해석기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앞으로 대법원과 헌재가 특정 사안에 대해 의견 대립을 할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워낙 민감한 문제라 답변하기가 곤란하다. 재판관으로 가서 더 많이 연구한 뒤 이야기해야 할 부분이다”며 비켜갔다.

―아무래도 여성이나 소외된 계층을 배려하는 역할을 기대하는 시선이 많다.

“정의(正義)는 원래 가진 자보다는 덜 가진 자들의 편에 서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다른 법관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어쨌든 내가 여자이고 여성이나 소외계층에 관심이 많다보니 아무래도 그런 측면이 강조되는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호주제 폐지 문제와 부모의 성을 공동으로 쓰는 문제 등도 관심이 되고 있다.

“호주제에 문제점이 많다는 것에는 국민 대부분이 공감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호주제를 어떻게 개선하느냐다.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부모의 양성을 따르는 문제는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여성권익 보호에 도움이 된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런 식이라면 앞으로 몇 세대가 지나면 자식의 이름이 얼마나 길어질지 생각해봤나. 우리나라보다 여권이 신장된 선진국의 경우에도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국가보안법이 현재의 남북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국가보안법 개정 문제는 입법부에서 정리해줘야 한다. 북한체제를 인정하느냐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요하는 문제다. 법원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판결하기 때문에 법률적 제약을 그대로 남겨둔 채 법원이 알아서 진보적으로 판결하라는 것은 무리다. 정치권에서는 북한과 여러 방면에서 교류를 하고 있는데 법은 바뀌지 않고 있으니 국민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법관들의 고민이 많다.”

그는 사회보호감호제 폐지 논란에 대해서도 “아이로니컬한 것은 사회보호감호제도 폐지 주장이 대부분 죄를 저지른 피고인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라며 “일반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고 무조건 폐지보다는 합리적인 대체 방안이 먼저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부장판사는 질문이 계속 굵직한 사회 문제들로 이어지자 부담을 느낀 듯 “너무 민감한 문제만 물어보는 것이 아니냐”며 난감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친 김에 우리 사회의 최대 이슈가 된 보수와 진보의 갈등에 대한 원인과 해결책을 물어봤다.

“나는 6·25전쟁 중에 태어났다. 당시 내가 자란 고장의 사람들은 낮에는 국군, 밤에는 빨치산에게 고통을 당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념 대립 때문에 국민이 분열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보수, 너는 진보, 이런 식의 이분법적 사고는 지양하고 서로의 장단점을 들어본 뒤 이견을 좁혀나가면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이나 사회 원로의 역할이 중요하다.”

―노무현(盧武鉉) 정부 출범 6개월이 됐는데 경제 사회적으로 갈등이 심하고 새 정부에 실망하는 사람이 많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너무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상대방은 이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것도 좋지만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한발 물러서서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책을 강구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최근에는 여성 법조인이 많이 배출됐고 특히 여성판사가 늘어나는 추세다.

“내가 사법연수원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나를 동물원 원숭이 보듯 하더라.(웃음) 여성이 드물기 때문에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됐다. 여성법률가는 일단 법률가적인 측면에서 끝없이 자기 연마를 해야 한다. 그리고 여성으로서 가정문제에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 자기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지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근 청주지검의 한 검사가 ‘몰래카메라’ 사건에 연루되고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동안 공직에 있으면서 법조인 윤리, 나아가 공직자 윤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져왔나.

“교과서적인 얘기지만 법조인은 성직자처럼 처신을 잘해야 한다. 그러나 법조인은 넓게는 모두 연수원 동료이고 출신 학교도 거의 같기 때문에 한국 사회 정서상 서로를 나 몰라라 하기 어렵다. 그러나 설령 인간관계가 소원해진다고 하더라도 현직에 있는 동안 오해받을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법조인으로서 가장 인상에 남는 판결이나 경험은….

“수원지방법원에 재직할 때 남의 땅에 무허가 건물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토지소유자에게서 소송을 당했고 결국 법리적으로 원고 승소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선고 후 피고들이 법원 판사실까지 찾아와 선처를 요구했다. 그때 법관으로서 한계를 느껴 몹시 가슴이 아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헌재 재판관에 지명된 후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웃음) 성실히 연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재판관이 되겠다.”


정리=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전효숙씨 가족이야기▼

헌법재판관으로 지명된 전효숙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 현직 여성법조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오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런 만큼 현재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남모르는 고충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업무와 육아 등 가정사를 병행하는 문제가 가장 큰 부담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남편(이태운 서울고법 부장판사)이 지금까지 나를 이해해주고 일도 많이 도와줘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자신의 경험 때문인지 그는 “전문 여성인력을 키우려면 맞벌이 부부의 육아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재판관 지명소식을 듣고 남편이 손이라도 잡아주며 격려해줬느냐’는 질문에 “평소에도 손목을 잘 잡아준다. 이번에도 손목을 잡으면서 그냥 덤덤하게 앞으로 열심히 잘 하라고 하더라”고 말한 것도 두 사람의 ‘금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남편과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지만 출퇴근뿐 아니라 점심식사도 항상 따로 해왔다.

그는 “아무리 부부라도 가정을 나오면 독립된 직장인이다. 직장에서까지 가족애를 과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웃으며 반문했다.

또 일과 관련해 서로 간섭하지는 않지만 법리적으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경우 서로 조언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결혼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묻자 수줍은 표정으로 “사법연수원에 들어와서 알게 됐고 동향(전남 순천) 출신이라 친해졌다. 요즘 사람들은 데이트도 굉장히 낭만적으로 하던데 우리 젊었을 때는 별로 그렇지가 못했다”고 대답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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