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경주문화엑스포는 '무질서엑스포'?

  • 입력 2003년 8월 19일 17시 24분


경주보문단지에서 열리고 있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8월13일∼10월23일)가 ‘신라의 향기’ 대신 ‘쓰레기’와 ‘무질서’가 난무하는 반(反) 문화적 행사로 빗나가고 있다.

전국에서 몰린 관람객들이 쓰레기를 아무렇게 버려 행사장 곳곳에 쓰레기 더미가 쌓이고 있으며 주최 측은 관객 늘리기에만 골몰해 행사장은 북새통이 되고 있다.

18일 오후 올 행사의 꽃인 주제영상이 열리는 에밀레극장 앞. 하루 16회 상영하는 ‘화랑영웅 기파랑’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 대기하던 관객들이 극장 안으로 들어간 뒤 극장 앞 200여평의 광장에는 쓰레기가 수북하게 쌓였다.

극장 출입구에 놓아둔 ‘플라스틱 분리수거용’ 쓰레기통에는 뒤섞인 쓰레기가 넘쳤다. 안내 도우미들은 “줄을 서서 차례 차례 입장해달라”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서로 입장하려는 관객들로 아수라장이 됐다.

극장 안도 마찬가지.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은 반입할 수 없는데도 일부 관객들은 몰래 들여가곤 했다. 한 도우미는 “극장 안에 깔려있는 카펫에 아이스크림이 녹아 있고 음료수가 엎질러져 청소하기도 어렵다”며 “안내 방송을 해도 소용없다”고 말했다.

관객은 관객대로 불평을 터뜨렸다. 주최측이 관객을 마구잡이식으로 입장시키는 바람에 17분짜리 주제 영상을 보기 위해 1∼2시간 기다리는 경우도 많다. 대구에서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온 김성곤씨(43) 부부는 “주제 영상은 봤으면 하는데 기다림에 지쳐 짜증이 난다”며 “문화엑스포장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어수선해 괜히 온 것 같다”고 말했다.

행사장 안 곳곳에 놓여있는 쓰레기 분리수거통도 무용지물이다. 분리수거통에 병 플라스틱 캔 등으로 분리해 버리는 관객은 찾아보기 어렵다. 쓰레기를 수거하던 미화원들은 “50여명이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데 분리수거가 거의 안돼 일이 두배나 많아졌다”고 말했다.

행사가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지적도 많다. 기본 입장권(1만 5000원)을 구입해 들어가도 공연을 비롯해 상당수 프로그램에 별도로 적게는 수천원에서 많게는 1만원 안팎의 관람료가 필요하다.

주최측이 올 행사의 특색으로 내세운 난장트기의 체험 프로그램도 별도 비용이 필요하다. 경기도 수원시에서 온 홍성찬씨(48) 가족은 “몇몇 프로그램은 문화행사 취지에 맞지만 대체로 장삿속이 심해 실망했다”며 “관람객들이 차분하게 문화엑스포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고 꼬집었다.

경주=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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