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씨 영장서 드러난 정경유착 실태

  • 입력 2003년 8월 14일 21시 49분


코멘트
14일 서울지법에서 열린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김대중(金大中) 정부 당시 정경유착의 단면이 드러났다.

권씨가 검찰 수사 결과를 대부분 부인하고 현대비자금 사건의 실체도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날 영장심사를 통해 권력층이 기업에 ‘검은돈’을 요구한 과정, 현대가 비자금을 조성해 권력 실세에게 전달한 경위 등이 드러났다.

먼저 현금 200억원은 정치인의 이해관계와 기업의 기대이익이 맞아떨어져 거래됐다는 것이 검찰 수사 결과.

검찰에 따르면 권씨는 2000년 4·13총선을 두 달 앞두고 고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을 만나 “총선이 임박했으니 빨리 (선거자금을) 도와주면 (금강산) 카지노 휴게소 면세점 등 가능한 것을 검토해 도와주겠다”며 먼저 돈을 요구했다.

이 말을 들은 정 회장은 권씨를 만난 날 밤 즉각 이익치(李益治) 전 현대증권 회장에게 자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는 것.

이 전 회장의 지시는 김충식(金忠植) 전 현대상선 사장-박재영(朴在榮) 전 현대상선 회계담당 상무를 거쳐 현대상선 직원들에게 전달됐고, 현대상선은 선박용선료를 117차례에 걸쳐 허위로 계상해 비자금 200억원을 빼돌렸다.

비자금 전달 편의는 권력실세와 친분을 쌓은 무기거래상 김영완(金榮浣·해외체류 중)씨가 제공했다. 이에 앞서 김씨는 “권력의 2인자를 만나게 해주겠다”며 권씨를 정 회장에게 소개했다.

김씨, 권씨, 정 회장은 권씨가 즐겨 찾던 S호텔 커피숍에서 만났으며 거의 매번 권씨가 가장 늦게 오고 가장 먼저 갔다는 것이 정 회장의 진술.

김씨는 같은 해 3월 4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 지하에 있던 홈바에 현대상선의 돈 상자 16개를 받아다 놓는 등 총선 직전까지 4차례에 걸쳐 현금 200억원을 권씨 대신 받았다는 것.

총선이 끝난 뒤 권씨는 “돈을 잘 받았다”고 정 회장에게 감사 전화를 했다는 것이 정 회장의 진술이다.

검은돈이 전달되자 이번에는 유동성 위기를 맞고 있던 현대가 권력 실세에게 매달렸다.

정 회장은 “금강산 사업이 매일 3억원씩 적자가 나고 있으니 카지노 사업 허가를 빨리 내달라”고 권씨에게 호소했다는 것.

그러나 권씨는 영장심사에서 “평생을 정직 신의 봉사 세 가지 덕목으로 살아왔다. 200억원이라는 돈을 내가 요구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자신과 관련된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