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팔고…생색내고…자치단체장 '총선 행보' 百態

  • 입력 2003년 8월 12일 18시 50분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최근 행보를 보면 거의 노골적으로 사전 선거운동을 하는 양상이다. 이들은 “움직이는 게 곧 표”라는 생각으로 하루 일정의 대부분을 주민 접촉이 가능한 행사 위주로 짜는 등 표 모으기에 혈안이 돼 있다. 각종 행사에 얼굴 내밀기, 산업시찰 알선, 출판기념회 등은 기본이고 예산 편성 및 집행과정도 총선 대비용이라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또 선거에 영향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공무원 및 주변 인물은 인사 등에서 혜택을 받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기본적인 행정 업무는 뒷전이고 지역의 주요 현안에 대한 결정도 미루는 게 다반사다.》

▽얼굴 내밀기=대전의 A구청장은 ‘5명만 모여 있어도 반드시 얼굴을 내민다’고 소문이 나 있다. 실제로 공식 일정이 끝나는 저녁시간대에는 주민들을 직접 접촉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관내 시장이나 가게, 가정집을 불쑥 방문해 주민을 놀라게 한다는 게 그의 전략.

내년 총선에서 A구청장과 경쟁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지역의 현역 국회의원 보좌관 이모씨는 “그의 최근 행보는 행정을 빙자한 사전 선거운동”이라고 비난했다.


출마가 거론되는 충남의 B군수는 관내 이장들에게 “경조사시 반드시 연락해 달라”고 신신당부하고 있으며 행사 때마다 얼굴을 내밀고 있다.

B군수는 하루에 할애한 결재 시간은 30분 정도여서 업무를 챙기는 데 소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의심스러운 예산편성 및 집행=내년 총선 때 분구(分區)가 확실시되는 울산의 C구청장은 분구될 예정인 지역에서 출마가 거론되는 인물. 그는 올 상반기 동안 1억원 이상의 공사 89건(총사업비 456억원) 중 52건(327억원)을 발주했는데 공사 발주의 대부분은 자신이 출마를 고려중인 지역에 몰리도록 했다.

이들 중 특히 우회도로개설 및 어린이집 개보수 등 ‘표를 모을 수 있는’ 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

반면 출마지역에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는 올 상반기에 이미 예산이 배정된 노인회관 건립을 발주조차 안 한 상태.

그는 지역민들로부터 “출마를 위해 예산을 편파 집행한다”는 지적을 받자 “아직 출마를 결정하지 않았고 사업 우선순위는 담당 부서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사회단체 내 사람 심기=대전의 D구청장은 최근 산하 관변단체 임원진 개편 과정에서 ‘자기사람’을 회장으로 밀었다. 기존의 회장이 내년 총선 때 경쟁자로 예상되는 인물의 최측근이기 때문이다.

충남 E군수도 여성단체 임원진을 이미 자기사람으로 교체했다. 또 껄끄러운 인사가 회장으로 있는 단체에 대한 예산지원을 소홀히 하다가 최근 군청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비난받기도 했다.

▽총선겨냥 음모론=광주의 경우 최근 모구청장 부인이 직원 승진인사와 관련해 5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자 “이번 수사가 구청장의 내년 총선출마설과 관련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원자력발전소를 끼고 있는 전남의 한 지역에서는 지역구 국회의원에 대한 ‘낙선운동’ 기류가 형성되자 곧바로 현직 단체장의 총선 출마설이 번지고 있다.

▽현역 국회의원과의 갈등=광주전남 지역에서는 구청장 2명, 군수 1명 등이 내년 총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얘기가 끊이지 않자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이들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국회의원은 측근을 통해 자기 지역 단체장의 출마 여부를 수시로 탐색하면서 총선 출마를 은근히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부 단체장들도 지역구 국회의원과의 불편한 관계를 의식해 총선을 앞두고 ‘얼굴 알리기’ 등의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은 극히 자제하는 모습이다.

대전=이기진기자 doyoce@donga.com

여수=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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