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잃은 자폐아 허망한 죽음…월드컵경기장 견학뒤 엄마 놓쳐

  • 입력 2003년 5월 22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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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성 언어장애를 갖고 있는 김모군(15·서울 마포구 S중학교 3년·정신지체 2급)은 지난달 3일 오전 11시경 어머니와 함께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을 견학하고 돌아오다 길을 잃었다.

어머니가 편의점에 들른 사이 순간적으로 ‘혼자’가 된 것. 그로부터 11시간 뒤 김군은 상암경기장에서 100km가 넘게 떨어진 경기 평택시에서 헤매고 있었다.

이날 오후 10시7분경 김군은 철길을 걷다 경부선 서울기점 62.64km 지점에서 화물 열차에 치여 숨졌다. 김군의 시신은 뒤따라오던 다른 열차 기관사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김군의 수중에는 돈이나 열차표가 없었다. 가족들은 김군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집착 때문에 무작정 철길 위를 걷다 이 같은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군은 정신지체장애인으로 평소 전철이든 버스든 무임승차를 해 왔다. 당시 누군가가 김군을 이상히 여겨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가족들은 김군이 실종된 다음 날 마포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내고, 전단을 돌리며 김군을 찾아 나섰다. 평택경찰서도 김군의 지문을 채취하긴 했으나, 신원이 확인되지 않자 전국에 수배를 내리고 전단을 배포했다. 서로 엇갈린 ‘사람 찾기’에 나선 것.

그러던 중 20일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이 경기 성남시에서 돌린 전단을 발견한 한 경찰관이 평택경찰서에 연락해 신원확인이 된 것. 김군의 시신은 사고 이후 48일이 지나서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김군의 아버지는 “주위의 장애인과 불우이웃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이 빚는 비극”이라며 “경찰이 내부 전산망에 등록된 변사자와 실종자 리스트를 비교만 했어도 이렇게 시신 인계가 늦어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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