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비틀 음주운전… 콕 찍으면 ‘딱’

  • 입력 2003년 5월 22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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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음주운전 단속방식을 바꾼 이후 음주운전자 적발건수가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이에 대해 “단속방식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새 단속방식이 오히려 가벼운 음주상태의 운전을 부추겼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는 방식변경 전과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지난달 23일 대로(大路)를 막고 운행차량 모두를 점검하던 음주운전 단속방식을 수시로 임의지점에서 ‘용의차량’을 선별하는 쪽으로 전환했다.

▽단속 실적=본보 취재팀이 유흥가를 끼고 있는 서울시내 5개 경찰서를 대상으로 새로운 방식 도입 전 일주일, 도입 뒤 일주일, 최근 일주일로 나눠 음주운전 단속 실적을 조사한 결과 도입 뒤 최초 1주일 동안은 단속 실적이 낮아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단속 건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입 전 1주일 동안 5개 경찰서의 음주단속 건수는 97건. 새 방식 도입 뒤 1주일간 32건으로 줄었다가 최근 일주일간은 187건으로 2배가량 늘어났다. 관내에 대학이 많은 강북 B경찰서의 경우 최근 일주일간 음주단속 건수는 71건으로 도입 전 일주일간의 43건보다 역시 많았다.

이 같은 결과는 “새 단속방식이 음주운전 행태를 더 키울 수도 있다”는 논란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단속건수는 많았지만, 음주로 인한 사고는 큰 변화가 없었다. 시행 전 1주일간 3개 경찰서 관내에서 발생한 152건의 교통사고 가운데 음주 사고는 28건(18.4%). 이는 최근 1주일간 발생한 교통사고 150건 가운데 음주사고가 25건(16.7%)인 것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었다.

▽바뀐 음주단속 방식=21일 오전 1시20분경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아파트 단지 사이 2차로 도로. 서초경찰서 소속 김모 의경(23)이 이모씨(46)의 차를 세웠다. 김 의경은 이씨의 차가 자신을 보고 움찔하는 순간을 포착해 차량을 세웠다. 이씨의 혈중알코올 농도는 0.043이 나왔다. 이어 회사원 문모씨(35)도 비슷한 행태를 보여 적발됐다.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0.153이 나왔다.

이날 경찰은 이곳과 강남역 뒤 유흥가 골목길을 포함해 모두 4군데를 돌아다니며 이처럼 새로운 방식의 단속을 벌여 음주운전자 9명을 적발했다.

서초경찰서 이동석 지도계장(43)은 “새 방식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요령이 늘었다”며 “특히 운전자들이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단속을 벌이는 것이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논란은 여전=새 단속방식이 ‘가벼운 음주운전’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도 늘고 있다. 회사원 김모씨(33·서울 마포구 동교동)는 “과거에는 술을 두세 잔 마시면 운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술을 마셔도 많이 취하지 않았다면 차를 몰고 간다”고 말했다. 대리운전 업계가 일부 도산하는 등 타격을 입고 있는 것도 음주 운전자가 늘었음을 입증한다. 서울의 A대리운전 업체 관계자는 “최근 한달간 손님이 크게 줄어 평균 수입이 20%가량 줄었다”고 토로했다. 교통장애인협회 임통일(任統一) 회장은 “단속 실적이 예전과 비슷한 것은 경찰이 실적 관리를 위해 일괄 단속을 병행한 데다 음주 운전자가 늘었기 때문”이라며 “한국인들의 술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유흥가 집중 단속 방식 등으로 효과를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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