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최규선' 96년 찍은사진 설훈의원 작년 입수 시도

  • 입력 2003년 4월 5일 0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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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설훈(薛勳) 의원이 이회창(李會昌) 전 한나라당 총재의 ‘20만달러 수수설’과 관련해 자금제공자로 지목한 최규선(崔圭善)씨와 이 전 총재가 96년 함께 찍은 사진을 입수하기 위해 최씨의 전 운전사 백모씨와 물밑교섭을 벌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설 의원은 당시 사진을 갖고 있던 백씨에게 자신의 지구당(서울 도봉구을)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도록 알선하겠다고 제안했으나 백씨가 이를 거부하고 계속 돈을 요구하자 검찰에 이 사실을 알려 백씨 집에 대한 압수수색을 유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청와대측의 20만달러 ‘기획폭로’ 개입 의혹(본보 3월29일자 A1·5면 참조)에 이어 여권이 ‘이회창-최규선 커넥션’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물증확보에 노력했음을 드러낸 것이어서 파문이 예상된다.

설 의원은 4일 본보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해 9월경 백씨가 전화를 걸어와 ‘문제의 사진을 갖고 있다’고 주장, 보좌관을 통해 접촉한 결과 사진을 갖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으나 백씨는 사진을 제공하는 대가로 3억원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백씨는 이에 대해 검찰에서 “설 의원측이 먼저 3억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엇갈린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 의원은 또 “백씨는 이 전 총재와 최씨의 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최씨의 수첩까지 갖고 있다고 말했다”며 “사진을 빌려주면 ‘평생 잊지 않겠다’고 설득했으나 백씨는 돈 요구에 이어 취직 알선도 요구했다. 하지만 신분 등에 문제가 있어 들어주지 못하면서 협상이 결렬됐다”고 덧붙였다. 설 의원측은 “솔직히 대선을 눈앞에 둔 (지난해 9, 10월) 시점에 이 전 총재와 최씨가 각별한 관계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을 공개할 수 있다면 ‘20만달러 수수설’을 뒷받침하고 대선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설 의원의 한 측근은 이와 관련, “협상 결렬 직후인 10월 중순 설 의원이 검찰에 전화해 사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검찰의 소극적 수사에 항의했다. 검찰은 다음날 새벽 백씨의 집을 전격 압수수색, 12㎝×8㎝ 크기의 사진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 전 총재가 96년경 서울에 있는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최규선씨와 나란히 찍은 사진을 지난해 수사 당시 확보했다고 확인했다.

이처럼 소문으로만 떠돌던 이 전 총재와 최씨의 사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검찰이 대선정국의 민감성을 고려해 수사에 미온적이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측은 “조사결과 촬영 시점이 20만달러 수수설 폭로 시점(2002년)과 워낙 떨어져 있는 등 수수설과 별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한나라당측은 “여권이 ‘20만달러 수수설’ 공작을 위해 연관성도 없는 사진 수집에 혈안이 돼 있었고 이를 위해 검찰까지 ‘동원’했다”고 비난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이 전 총재에게 타격을 줄 목적으로 ‘청부수색’을 유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설 의원은 지난해 4월 20만달러 수수설 폭로 회견 후 물증을 제시하라는 한나라당측의 공세에 시달렸으나 같은 해 10월5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최근 최규선씨의 측근을 만났는데 그도 ‘내 주장이 100% 사실일 것이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백씨가 갖고 있던 사진의 존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설훈 일문일답▼

―백씨가 문제의 사진을 갖고 있는 것은 어떻게 알았나.

“백씨가 먼저 내 보좌관을 만나 사진을 보여줬고 사진값으로 3억원을 요구했다. 이에 보좌관이 ‘사진이 진짜 같다’고 보고해서 백씨를 직접 3번 만났다. 그런데 백씨는 계속 돈을 요구했고 나는 ‘그렇게 큰돈은 없다. 그러지 말고 도와달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그 사진이 이회창 전 총재의 20만달러 수수설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백씨를 이전에 알고 있었나.

“내가 최규선의 운전사를 어떻게 알겠나.”

―그렇게 사진이 중요했다면 왜 계속 백씨를 설득하지 않았나.

“나중에는 돈 대신 취직 부탁을 하기에 내 지구당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에 대해 알아보니까 학력 등 나에게 거짓말을 했더라. 그때부터 신뢰가 가지 않아 접촉을 끊었다. 나중에 들으니 나에게 찾아오기 전 한 일간지에 그 사진을 팔려고 한 적도 있었다.”

―문제의 사진을 직접 봤나.

“백씨가 나에게 직접 보여주지는 않았다. 사진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처음 봤다.”

―백씨에게 정말 가격을 낮춰 제안하지 않았나.

“아무리 중요한 증거라지만 어떻게 국회의원이 돈 주고 살 수 있나. 지금 재판 등으로 정신없지만 모든 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생각한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부친과 薛의원 고교동문”운전사 백씨 문답▼

―언제 최규선씨로부터 최씨와 이회창 전 총재가 함께 찍은 사진을 입수해 설 의원에게 팔려고 했나.

“그 문제로 (검찰 조사 등으로) 너무 고통받았다. 더 이상 내 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설 의원이 먼저 3억원을 주겠다고 요구했나.

“그 문제는 아는 바 없다.”

―백씨의 아버지가 설 의원과 마산고 동창이라던데 사진을 팔려는 과정에서 도움이 됐나.

“아버지가 마산고 출신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아는 게 없다.”

―설 의원이 취직시켜주겠다고 했으면 그 조건에 사진을 넘겨줄 수 있지 않았나.

“나는 아는 게 없다. 앞으로 연락하지 마라.”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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