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고교 8회 졸업생, 20년만에 타임캡슐 열어보니…

  • 입력 2003년 3월 20일 18시 31분


코멘트
여의도고 8회 졸업생들이 당시 김재규 교장(오른쪽)과 함께 ‘타임캡슐’에서 꺼낸 20년 전의 작문집, 그림집을 보며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 -전영한기자
여의도고 8회 졸업생들이 당시 김재규 교장(오른쪽)과 함께 ‘타임캡슐’에서 꺼낸 20년 전의 작문집, 그림집을 보며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 -전영한기자
“추억과 미래를 담아주세요. 제목은 ‘자화상’. 반드시 20년 후 졸업생들과 함께 모여 개봉할 것. 1983년 2월11일 교장 김재규.”

20년 전 서울 여의도고교 김재규 당시 교장(76)은 학생들(8회 졸업생)에게 이런 작문숙제를 내주었다. 불혹(不惑·40세)을 앞둔 그 학생 대표들이 약속대로 19일 오후 모교 도서관에 보관된 ‘타임캡슐’을 열었다.

‘수학여행 때 남녀합반 시켜달라고 경주 여관 앞에서 선생님들께 떼를 썼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홍성민 정일학원 사장) ‘최고의 전문경영인이 될 수 있도록 대학에 가서도 노력해야지.’ (노상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홍차에다 레몬즙을 타서 일에 지친 남편에게 갖다주는 가정주부가 돼 있겠지.’ (추계예대 이보아 문화산업대학원 교수) ‘동료교수들과 논문에 대한 토의를 열심히 하고있지 않을까.’ (방송인 김자영)

당사자들은 20년 전 자신들의 풋풋함과 유치함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 자리에는 서민환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임찬균 조나단스쿨 대표, 이동욱 산업자원부 서기관, 한석훈 연세우신의원 원장, 정송 한국과학기술원 전자과 교수 등이 대표로 참석했다. 이들은 4월에 있을 동창회 때 ‘자화상’의 복사본을 동기생에게 나눠주고 60세가 되면 개봉할 ‘2차 타임캡슐’을 다시 작성할 계획이다.

남학생들은 ‘21세기 공업한국을 위해 이 한몸 바치겠다’는 포부를 가장 많이 적어냈다. 또 ‘본고사폐지 과외금지 내신반영 교복자율화…우리에겐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현실을 고민하기도 했다. 여학생들은 ‘끔찍하다 마흔살, 중년부인이라니 믿어지지 않아’처럼 나이가 드는 것에 부담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850명의 졸업생 중 의사와 대학교수가 120여명에 달할 정도로 당시 ‘우등생’이 많았다는 게 참석자들의 말. 동기생 중에는 국내 유일의 ‘박물관 경영학’ 박사인 이보아 교수, 부천시립악단 타악기주자인 김광원씨처럼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이도 많다. 김진영 뉴욕주립대 버팔로분교 경제학과 교수, 서유신 서울대 의대 교수, 최창원 SK글로벌 부사장 등 다양한 분야에도 진출했다.

이날의 단연 화제를 모은 것은 김 전 교장의 ‘열린 교육’.

학생들이 불만이 있을 경우 교장실 문을 언제든지 두드리게 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스타일이었던 것. 김 전 교장은 초등학교 졸업학력으로 행정고시에 합격, 여의도고와 현대고 교장, 영동대 총장을 지냈다.

김 전 교장은 “분필 든 사람들은 역시 끝까지 재미를 봅니다. 이순(耳順·60세)이 되면 다시 한번 모이자고 했는데, 하늘나라에 있어도 꼭 지켜보겠습니다”며 미소지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