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인간 신호등' LG전자 김해공장 이기재씨

  • 입력 2003년 1월 15일 20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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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제품 모터를 생산하는 LG전자 김해공장의 현장 기능공인 이기재(李基宰·45·사진)씨는 지역민들로부터 ‘인간 신호등’, ‘시민 포돌이’로 불린다.

이씨가 교통 정리와 방범 순찰에 뛰어든 것은 20년 전. 그는 오전 6시부터 7시 50분까지는 회사 인근인 안동공단 4거리에서, 회사를 마친 뒤인 오후 5시반부터 2시간 동안은 집 부근인 전하 6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한다.

시민들 중에는 이제 ‘명예 경찰관’ 정복을 입고 흰 장갑을 끼고 교통정리를 하는 그를 알아보고 “수고한다”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많다. 출퇴근 시간에 쏟아져 나오는 차량들을 정리하다 보면 금새 등줄기에 땀이 맺힌다. 추위나 더위도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악천후와 일요일을 빼고는 쉬는 날이 없다. 회사에서 온종일 선채로 모터 코일을 감고 부품을 끼우는 작업을 마치고 나면 피로가 몰려오지만 이씨는 저녁 시간도 이웃을 위해 사용한다.

밤 9시부터 칠산파출소로 다시 ‘출근’해 경찰관과 조를 이뤄 다음날 새벽 1시반까지 관내를 순찰하고 소내 근무도 돕는다. 주 1, 2차례 실시하는 음주운전 단속에도 참여한다.

이씨는 술취한 사람들 간의 시비가 벌어지면 ‘형님’, ‘아우님’ 하며 다독거려 해결하곤 해 오히려 경찰관 보다 낫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칠산파출소 손주식(孫柱植)소장은 “차분한 성격에 지역민을 많이 알고 있는 이씨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씨가 20여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대를 한뒤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외동 아들인 그는 주위 사람을 폭넓게 사귀면서, 이웃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주겠다는 생각때문이었다.

10년전에는 아예 김해모범운전자회 회원으로 가입했고 지난해에는 김해경찰서에서 6주동안 교육을 받은 시민경찰 1기생이다. 사회복지시설을 찾고 불우이웃을 돕는 일도 생활의 일부가 됐다.

그는 “남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는 해본 사람만 안다”며 “집안일에 상대적으로 소홀했지만 아내와 아이들도 응원군이 된지 오래다”며 시골아저씨처럼 피식 웃었다.

김해=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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