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노동 동일임금 盧공약 논란]인수위 "비정규직 차별철폐"

  • 입력 2003년 1월 9일 18시 25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의 공약인 ‘임금과 근로조건의 동일한 대우’는 일반인의 관심 밖이었던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를 재조명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이 공약을 구체화하면서 해법이 단순해지기보다는 더 헝클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노 당선자의 공약이 ‘동일 노동, 동일 임금’으로 일반에게 알려지자 주무 부처인 노동부는 “이는 불가능하다”고 펄쩍 뛰고 있다. 또 경영계는 비용 증가에 따른 경영 압박을 이유로 강력 반대하고 나섰고 노동계는 즉각 도입을 요구해 맞불을 놓고 있다.

▽노동부의 반대 배경=노 당선자의 공약이 현실을 너무 무시한 것으로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현실적 적용 가능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시각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9일 인수위 보고 내용과 수위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며 “그러나 아무리 양보해도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문제는 노 당선자측이 애당초 무리하게 내세운 공약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노동부도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나고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을 가급적 줄이고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그러나 각론에서는 인수위측과 큰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노동부는 무엇보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적용의 현실적 어려움을 내세운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래 의미는 남녀 근로자간에 제기됐던 ‘동일가치 노동, 동일 임금’을 말한다. 1989년 남녀고용평등법에 이 조항이 생겼지만 은행 등 일부 업종을 빼고는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도입 14년이 됐지만 지켜지지 않는 항목이 제도를 바꾼다고 갑자기 달라질 리 없다는 것이다.

무엇을 ‘동일 노동’으로 보느냐에 대해서도 통일된 기준이 없다. 같은 일을 한다고 해도 일의 부가가치와 성과가 천차만별인데 이 같은 구분 없이 일괄적으로 임금을 적용한다는 것도 문제다.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하는 등 기술적인 난점도 많다.

▽인수위 입장=인수위는 아직 동일 노동, 동일 임금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고 있다. 현재 이를 검토하고 있는 단계이지만 노 당선자의 공약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은 분명하다.

인수위가 이날 보고에서 비정규직 중 특수 형태 종사자들에게 단결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해달라고 노동부에 요청한 것은 이것이 노 당선자의 공약이기 때문이다.

인수위 사회문화여성분과 권기홍(權奇洪) 간사는 7일 “인수위 일부에서 주장해 온 ‘동일노동에 동일임금’까지 법제화할지 여부는 두고봐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그러나 권 간사는 “임시직 일용직 등 비정규직과 정규직 근로자가 갖는 현실적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차별적 요소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덧붙였다.

▽비정규직의 모호성=노동계는 전체 근로자 1300여만명의 55% 이상을, 노동부는 27% 정도를 비정규직으로 보고 있다. 노동부는 통계상 임시직, 일용직 중 겹치는 부분을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규모에서 의견차가 크기 때문에 대책도 엇갈리는 형편이다.

비정규직 형태도 한시 근로자 또는 기간제 근로자, 단시간 근로자, 파견 용역 형태로 종사하는 근로자 등 천차만별이고 계속 새로운 형태가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획일적 제도를 적용할 경우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위험이 크다는 것이 노동부의 입장이다.

노사정위원회에서는 비정규직의 형태에 따라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 결성을 허용하거나 근무기간을 정해놓고 계약제로 일하는 경우 계약이 완료됐다고 해서 무조건 해고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개별적인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문제=노 당선자는 현행 산업연수생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해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1990년대 중반부터 추진해온 고용허가제를 차제에 도입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노동부는 고용허가제가 외국인 근로자를 등록시킨 뒤 취업을 알선하도록 함으로써 송출과 채용과정에서 발생하는 비리와 인권침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내외국인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노동허가제를 도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영계는 인건비 상승 등으로 3D업종이 대부분인 중소기업의 부담이 커진다며 산업연수생제도의 존속을 바라고 있다.

▽노사 대립 악화 우려=노 당선자의 노동부문 공약을 둘러싸고 항목별로 이해 당사자들이 다른 견해를 내고 있고 특히 노동계와 경영계가 극단적인 반대입장을 밝히고 있어 정책 채택과 추진과정에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2002년 8월 현재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96만원으로 정규직의 절반 수준인 52%에 불과하다”며 “비정규직과 여성에 대한 차별금지와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보장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이날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불가 입장을 정리한 노동부를 일제히 규탄하고 나서 험난한 앞날을 예고했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 이호성(李浩盛) 사회복지팀장은 “기업들은 근로자의 능력과 성과에 따라 보상체계를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며 “특히 임금문제는 기업 고유의 인사권과 관련된 사항”이라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노동공약과 각계의 입장
공약노동부노동계경영계
비정규임금·근로조건 동일대우동일노동 동일임금 현실적 불가동일노동 동일임금 즉각 도입강제화 반대
남녀임금·근로조건 동일대우동일노동 동일임금현실적 불가동일노동 동일임금즉각 도입강제화 반대
외국인산업연수생제도 개선고용허가제 도입노동허가제 도입산업연수생제도 존속
노사정위원회위상 강화협의기구화체계 재구축 요구협의기구화

이 진기자 leej@donga.com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