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훈한 성탄 3제]“산타가 오셨어요”

  • 입력 2002년 12월 24일 19시 05분


재익(왼쪽)과 광명 두 어린이와 어머니들이 주치의 구홍회 교수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안철민기자
재익(왼쪽)과 광명 두 어린이와 어머니들이 주치의 구홍회 교수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안철민기자
《어려운 사람들에게 올해도 어김없이 ‘산타’가 찾아왔다. 소아암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거액을 내놓은 할아버지, 오갈 데 없는 장애인들에게 잔치를 열어주기 위해 미국에서 일부러 찾아온 전쟁고아 출신의 기업체 부사장, 부모 없이 사는 어린 자매에게 선물을 안긴 동네 아저씨….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따뜻하고 살만한 게 아닐까.》

▼김문경옹 성금 3억 본사기탁, 말기암 어린이 2명에 새생명▼

“그분이 바로 우리 아이에게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입니다.”

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8층 소아암병동. 신경모세포종(神經母細胞腫)이라는 암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 수술을 받은 뒤 ‘생명의 빛’을 찾은 재익이(5)와 광명이(4) 두 어린이의 어머니들은 김문경(金文經·86·사진)옹을 이렇게 불렀다.

서울 중구 명동에서 귀금속 가게 ‘정금사’를 운영했던 김옹이 동아일보사에 기탁한 3억원(본보 3월 9일자 A31면 참조) 중 일부를 치료비로 지원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아이는 모두 말기암이어서 자신의 혈관에서 혈액줄기세포를 뽑아낸 다음 몸에 남아있는 암세포를 항암제로 초토화시킨 뒤 뽑아낸 혈액줄기세포를 다시 투여하는 자가 조혈모세포(造血母細胞) 이식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치료비 수천만원을 구할 길 없는 두 아이의 부모들은 눈물로 날을 보내다 8월 희소식을 들었다.

“두 번째 조혈모세포이식을 끝낸 광명이의 맑은 눈빛을 볼 때마다 그분의 고마움을 가슴 속 깊이 느낍니다.”(광명이의 어머니)

“재익이가 유치원에 갈 수 있게 돼 너무 기뻐요. 그분도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재익이의 어머니)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고아출신 사업가 하만경씨 장애인 시설 찾아 잔치 한마당▼

홀트복지타운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잔치에서 하만경씨가 장애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양〓이종승기자

오갈 데 없는 장애인 280여명이 살고 있는 경기 고양시 일산구 탄현동 홀트일산복지타운에서는 24일 오전 크리스마스 잔치가 열렸다.

행사를 준비한 사람은 전쟁고아 출신으로 미국 나이키사 본사 부사장에 오른 하만경(河萬璟)씨.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잔치를 열어주기 위해 일부러 한국을 찾은 하씨는 옷가지와 후원금까지 선물로 내놓았다. 친분이 있는 국내 기업인들도 잔치에 동참했다. 하씨 등은 타운 내 교회에 마련된 식장에 음식을 차려놓고 장애인들과 함께 점심을 들며 성탄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곳 장애인들로 구성된 합창단 ‘영혼의 소리로’는 손님들을 위해 동요를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이어 함께 손잡고 캐럴을 합창하는 등 즐거운 시간이 이어졌다.

하씨는 “이곳의 장애인들을 만난 것은 하느님의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들을 통해 내 삶에 새로운 의미가 생겼고 그들에게서 인생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씨와 함께 이날 행사에 참석한 대성그룹 김영대(金英大) 회장 등 기업인들은 후원금 1300여만원을 전달했다.

하씨는 자신이 전쟁고아라는 것 외에는 나이와 성장 배경, 선행 이유 등에 대해 일절 밝히기를 꺼렸다.

고양〓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충남 보령주민 10명 산타 자청, 불우아동에 선물 전달▼

“다정아!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가져왔다.”

‘일일 산타’가 된 천옥석씨가 24일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다정양을 바라보며 웃고있다. 보령〓지명훈기자

24일 오후 3시 충남 보령시 대천5동 박다정양(7)의 집에 산타 3명이 들어섰다.

다정양과 언니 다은양(8), 그리고 할머니 이옥분씨(85)는 갑작스러운 산타의 ‘집단 출현’에 어리둥절했다. 이들 자매는 부모 없이 할머니와 어렵게 살고 있다. 자원봉사 학생 2명과 함께 이들은 찾은 산타 천옥석(千玉錫·57·자영업)씨는 다정양 자매에게 바비 인형을 선물로 건넸다. 자매가 기뻐 어쩔 줄 몰라하자 천씨는 안쓰러운 마음에 지갑에서 만원씩을 꺼내줬다.

“그런데 루돌프 사슴은 왜 안왔어요?”

산타가 이웃 아저씨라는 것을 눈치챈 다정양이 장난기가 섞인 질문을 던지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이날의 ‘사랑의 산타 선물나누기’ 행사는 대천5동사무소 사회복지사 곽현정(郭賢貞)씨가 아이디어를 냈다. 곽씨는 “물질보다 정을 함께 나누는 것이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것 같아 행사를 기획했다”고 덧붙였다.

이 행사에는 주민 10명이 자원해 23일부터 이틀간 소년소녀가장과 결식아동 등 48명을 일일이 찾아가 정을 나눴다. 자원 산타들은 “손을 맞잡고 선물을 주고 나니 가슴이 뭉클했다”고 입을 모았다. 보령〓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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